후회 없는 삶을 위해

꾸준함의 가치

by Pearl K

골목을 돌아 올라가면 낡고 삐걱거리던 파란 대문이 보였다. 혼자서 한참을 종종걸음으로 걸어 올라가면 파란 대문 집이 있었다. 그 집에선 언제나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왔다.


겨우 다섯 살. 혼자서 다녀오기엔 너무 먼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를 데려다주는 사람은 없었다. 언제나 꼭 맞는 신발을 신고 작은 보폭으로 혼자 씩씩하게 파란 대문 집까지 걸어 매일 피아노를 배우러 다녔다.


파란 대문 집에 들어가면 유리창처럼 생긴 미닫이 문 앞은 언제나 신발들로 빼곡했다. 집 안에는 방 세 개마다 각각 피아노가 한 대씩 있었다. 항상 아이들로 북적거렸던 파란 대문 집 피아노 학원에서 초등학교 2학년 때 전학 가기 전까지 피아노를 배웠다.


바이엘, 체르니 그런 말들은 몰랐지만 '박첨지는 밭 있어 이 야이 야호~'를 쳤던 것은 기억한다. 선생님은 계란을 쥔 것처럼 손 모양을 하고, 손등 위에 계란을 올렸다 생각하고 살살 피아노를 치라고 했다. 조심조심 따라 하다가도 이내 우당탕탕 제멋대로 치다가 파란 대문 집 선생님에게 손등을 맞기도 했다.


다른 지역으로 전학 간 후로는 집에 피아노 선생님이 오시는 것으로 해서 체르니 100번과 30번, 40번, 쇼팽과 베토벤을 쳤다. 하농을 연습할 때는 너무 지겨워서 한 번 치고 동그라미 안에 줄을 두세 개씩 마구 그려 넣었다. 매주 방문하시는 피아노 선생님은 겨우 일주일을 주면서 동그라미를 스무 개씩 그려놓고 가셨다.


어느 순간부터 정해진 연습이 너무나도 지겨워졌다. 의미 없는 연습을 계속하는 것이 시간낭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5살 때 시작한 피아노를 그렇게 열두 살에 그만두기로 했다. 더 이상 연습을 못하겠어서 피아노를 관두겠다는 내게 엄마는 다시 물으셨다.


-진짜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후회 안 해. 절대 안 해.


절대 후회할 일 없다며 큰 소리를 쳤는데 지금은 몹시 후회된다. 그때 조금만 참고 더 배워 볼 걸. 최소한 간단한 코드 반주를 할 만큼이라도 피아노를 쳐둘 걸. 처음 몇 달은 좋았는데 그다음부터는 내내 그 순간을 후회했다. 연습이 지겨워 피아노를 관두고 나니 피아노가 쳐다보기조차 싫었다. 한동안 피아노 같은 건 다 잊고 노느라 바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니 이미 배웠던 것조차 새하얗게 다 잊어버렸다.


찬구들 사이에서 한 장 짜리 가요 악보가 한참 유행하기 시작했다. 분명 이 정도쯤은 너끈히 쳤었는데 생각과는 다르게 잘 움직여지지 않는 내 손가락이 원망스러웠다. 호기롭게 배움을 때려치우던 순간은 잊고, 애꿎은 내 머리만 셀프로 쥐어박곤 했다.


계속 후회하던 순간은 새로운 용기를 낳았다. 몇 년 전 따로 시간을 들여 코드 반주를 배웠다. 배울 때는 그나마 조금 되는 것 같았는데, 찬양 반주를 하기엔 여전히 실력이 한참 부족하다. 칼을 뽑았으면 썩은 무라도 잘라야 한댔는데, 나는 칼을 뽑아 허공에 몇 번 휘두르다 '아 재밌었다'하고 다시 집어넣고 마는 건 아닌가 싶어 스스로의 꾸준하지 못함과 끈기 없음이 참 싫어진다.


꾸준하게 무언가를 해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삶으로 증명해 내고 있는 셈이다. 새로운 걸 시작하는 것은 좋아하면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오늘따라 참 부끄럽다. 이제부터라도 좀 다르게 살고 싶다.


김정현 작가의 책 <아버지의 눈물> 속 한 구절을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번쩍이는 스포트라이트나 화려한 그 무엇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무엇을 하건 후회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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