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earl K Mar 29. 2022

예상치 못했던 우연한 만남

사람다운 사람으로

주말에 강아지를 데리고 집에서 가까운 거리의 허브농장 겸 애견 동반 카페를 방문했다. 인당 입장료를 지불하면 무료 허브음료도 제공하고, 식사가 되는 라면과 떡볶이도 주문 가능한 데다 목줄 없이 오프 리쉬로 자유롭게 강아지가 뛰어놀 수 있어 자주 방문하게 될 것 같은 곳이었다.


   사실 두 번째 방문이었는데 한참 뛰어놀다가 추가 주문을 위해 카운터로 갔더니 아르바이트를 하던 직원 한 명이 내게 혹시 D고 사서샘 아니시냐고 물었다. 맞다고 했더니 저 누군지 모르시겠냐고 또 물어본다. 솔직하게 요즘 다들 마스크를 써서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르바이트 직원이 말했다.


  “저 수진이에요.”

  “아! 수진이구나 안녕. 반가워. 잘 지냈냐? 너 나랑 같은 동네 주민이기도 하잖아.”


  “맞아요. 처음엔 샘이 맞는지 긴가민가했는데 자세히 보니 맞네요.”

  “대학 생활은 잘하고 있어? 여기서는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는 거야?”


   수진이는 그렇다고 했다. 다른 손님들이 계속 몰려오는 데다 봉봉이가 낑낑대는 통에 오래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반가우면서도 낯선 기분이었다. 생각해 보니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18년 가까이 같은 지역에서만 오랫동안 일을 하다 보니 이런 예상치 못했던 우연한 만남들이 예전부터 자주 있었다.


   첫 학교에서 근무하던 3년 차에 역 근처 VIPS에 친한 샘과 식사를 하러 갔다가 졸업 후 대학생이 되어 주말 알바를 하는 초원이를 우연히 만났었다. 초원이는 도서관에 자주 오는 친구를 따라오던 아이였는데, 자기 이름도 꼭 기억해달라던 친구였다. 알아보고 반가워했더니 자기 이름을 기억해 준다고 너무 기뻐했고, 할인 꿀팁까지 알려주었다.


   학교에서 일하면서 교육대학원에 다닐 때는 졸업생 범수를 버스 안에서 우연히 만났다. 알고 보니 범수는 내가 다니는 대학원과 가까운 전문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근무지 근처도 아닌데 사람으로 가득 찬 버스 안에서 반갑게 쌤~을 외치는 범수 덕분에 살짝 당황했지만, 오랜만에 반갑게 밀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학교도 여러 군데로 옮겨 다녔고 전교생들이 드나드는 공간인 도서관에서 종일 일하다 보니, 나는 오히려 잘 기억을 못 해도 먼저 내 정체를 알아봐 주는 아이들도 만난 적이 있다. 그때마다 참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한 마음이 든다. 그 아이들이 기억하는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의 최애 가수가 주크박스 뮤지컬을 만들었던 적이 있었다. 개인적인 친분으로 그 공연에서 우연히 OST CD 판매를 도와주게 되었다. OST 판매부스를 꾸미고 있는데 공연기획사 직원 한 명이 내게 오더니 혹시 A고 사서샘이 아니시냐고 물었다. 지금은 아닌데 한동안 있었다고 했더니 샘은 저를 기억 못 하시겠지만 저는 도서관에 몇 번 가서 샘 얼굴이 딱 생각났다며 반가워해 주었다.


   뮤지컬 어워드 입장을 보러 세종문화회관에 갔다가 소리 지르던 군중들 속에서 우연히 도서부 차장을 했던 영미를 만나기도 했고, 나의 은사님이 운영하시는 카페에 갔다가 은사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던 내 제자를 만난 적도 있었다. 그 외에도 학교에 근무하러 온 사회복무요원이 제자였다 던 지 그때는 잘 몰랐는데 졸업 후 연예인이 되어 TV에서 보고 깜짝 놀라게 한 아이들도 있었다.


   언젠가는 시내 가장 번화가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카페에 들렸는데 카페 손님들 중에 두 팀은 A고 제자, 한 팀은 J고 제자, 다른 한 팀은 B 중 제자여서 깜짝 놀란 적도 있었다. 아무래도 동네이고 생활 반경이 비슷하다 보니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또 2년 전 건강 악화와 여러 가지 이유로 1년간 휴직을 했다. 한참 코로나가 창궐하기 시작하던 시기라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는 어려웠지만, 옛 제자들과 차례대로 돌아가며 밥도 먹고 근황도 이야기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었다.


   내가 기억하던 기억하지 못하던 이 아이들에게 나는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어 있었다.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했다. 보잘것없는 나라는 존재가 누군가에게 너무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이. 이런 이유로 어딜 가든 일상 속에서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야겠구나 하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참된 스승이란 단순한 지식과 앎의 전달에 그치는 것이 아닌 더 나은 인격체로서의 길을 제시해 주는 스승일 거라고 한 연극 배우는 말한다. 스승이라는 말을 쓰기엔 내가 여전히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사람다운 사람으로 남고 싶다 소망을 품어 본다.

   

   다만 졸업 후 나이가 든 제자들과 만났을 때 조금이라도 더 나아진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처음 그 아이를 만났던 그대로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더 나은 인격체로서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멋진 사람으로 또 존재로 계속 자라 갈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몸에서 울리는 비상신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