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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못했던 말, 하고 싶었던 말

이젠 침묵하지 않을 거야

by Pearl K

“우리 사이엔 낮은 담이 있어 내가 하는 말이 당신에게 가 닿지 않아요. 내가 말하려 했던 것들을 당신이 들었더라면, 당신이 말할 수 없던 것들을 내가 알았더라면. 우리 사이엔 낮은 담이 있어 부서진 내 마음도 당신에겐 보이지 않아요. 나의 깊은 상처를 당신이 보았더라면, 당신 어깨에 맴돈 긴 한숨을 내가 보았더라면. 우리 사이엔 낮은 담이 있어 서로의 진실을 안을 수가 없어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마음의 상처 서로 사랑하고 있다 해도 이젠 소용없어요. 나의 닫힌 마음을 당신이 열었더라면, 당신 마음에 걸린 긴 근심을 내가 알았더라면.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마음의 상처 서로 사랑하고 있다 해도 이젠 소용없어요. 우리 사이엔 낮은 담이 있어 서로의 진실을 안을 수가 없어요. ”


김윤아가 부른 ‘담’이라는 노래의 가사다. 이 곡으로 가족 간의 소통에 관한 짧은 연극을 공연한 적이 있었다. 연극은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돌보는 4인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남편과 아내, 오빠와 여동생 가족들은 치매에 걸린 할머니 앞에서 서로의 상처를 돌아보게 된다. 알고 보니 사실은 치매에 걸리지 않은 가족들이 이미 소통이 전혀 안 되는 상태였고, 할머니의 치매를 통해 그 사실을 직면하게 되는 내용이었다.


조선 시대 유교로 인해 여자의 침묵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되면서, 왠지 마음속에 있는 말들을 밖으로 내뱉는 것은 천박하고 이기적인 행동이라는 취급을 받아 왔었다. 그런 분위기는 손윗사람을 대하는 문화와도 이어져, 시부모님에게 며느리가, 직장 상사에게 직원이, 군대 선임에게 이등병이 무언가를 말하는 것 자체가 너무도 어려운 사회를 우리는 살아왔다.


사실 건강한 사회는 서로 지위고하나 가족 내의 위치에 관계없이 하고 싶은 말을 편안하게 하고 소통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닐까? 사람은 신이 아니기에 말하지 않으면 상대의 마음을 알아서 깨달을 수 없다. 내가 하지 못했던 말도, 진짜 하고 싶었던 말도 대부분 그런 사회적인 틀로 인해 묵살되고, 말할 수 없게 되어버린 적이 많았다.


어릴 때 아빠는 정기적인 가족회의 시간을 갖자고 하셨다. 우리들은 그 가족회의 시간을 참 싫어했다. 가족회의가 가족회의가 아닌 아빠의 일방적인 잔소리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족회의인데 왜 아빠만 말하냐고, 우리 의견도 들어야지 했더니 아빠는 흔쾌히 그래, 너희들 의견도 말해 보라고 하셨다.


모두가 예상했겠지만 나의 의견을 말한 순간 묵살당했고, 어떤 의견을 내든 또 다른 잔소리 거리를 제공할 뿐이었다. 이런 사회 분위기와 위계관계에서 얼마나 많은 자녀들이, 며느리들이, 군대 후임들이, 직장 후배들이 하고 싶은 말을 참으며 살아야 했을까.


이제 확실히 시대가 바뀌었나 보다. 2019년 개봉한 알라딘 실사영화에서는 쟈스민의 솔로곡이 추가로 등장한다. 제목도 찬란한 ‘Speechless’. 이전에는 알리의 노래, 지니의 노래만 솔로가 있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모두 ‘이제는 침묵할 수 없어’ 하는 마음으로 당당하게 할 말은 하고 살 수 있기를. 그렇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쟈스민의 솔로곡 한글 번안 가사를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날 무력하게 할 파도가 다가와 바닷물은 날 아래로 끌어당기고 모래를 집어삼키고, 아무 말 못 하게 했어. 내 목소리는 천둥소리에 사라져 버렸지. 하지만 난 울지 않아 난 무너지기 시작하지 않을 거야. 그들이 날 막거나 끊어내려 할 때마다 말이야. 난 침묵하지 않을 거야. 넌 날 침묵하게 할 수 없어. 네가 그러려 해도 난 떨지 않아. 내가 아는 건 난 절대 침묵하지 않을 거라는 거야. 왜냐면 난 숨을 쉴 테니까 그들이 날 질식시키려 할 때 말이야. 날 과소평가하지 마. 내가 아는 건 난 절대 침묵하지 않을 거라는 거야.


바위에 새겨진 모든 규칙과 단어들, 수백 년이 지나도 꺾이지 않는 ‘네 자리를 지켜’, ‘목소리 내지 않는 편이 좋을 거야.’ 하지만 이제 그 이야기는 끝이 나네. 하지만 난 울지 않아 난 무너지기 시작하지 않을 거야. 그들이 날 막거나 끊어내려 할 때마다 말이야. 난 침묵하지 않을 거야. 넌 날 침묵하게 할 수 없어. 네가 그러려 해도 난 떨지 않아. 내가 아는 건 난 절대 침묵하지 않을 거라는 거야.


폭풍을 몰아치게 해. 난 부러질 수 없어. 난 절대 침묵하며 살지 않을 테니. 왜냐면 난 내가 침묵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야. 이 세상 안에 날 가둬봐. 난 그저 쓰러져 죽지 않을 거니까. 난 이 부서진 날개를 가져가겠어. 그리고 내가 하늘을 가로질러 가는 걸 바라봐. 메아리가 말하는 걸 들어보라구. 난 침묵하지 않을 거야. 넌 날 침묵하게 할 수 없어. 네가 그러려 해도 난 떨지 않아. 내가 아는 건 난 절대 침묵하지 않을 거라는 거야._Speechless(2019알라딘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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