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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것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by Pearl K

생과 사가 간발의 차이로 스쳐 지나가는 순간들을 지켜보는 것은,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는 고통스러운 삶의 시간들에 대해 한층 겸허한 시선을 갖게 한다. 아마도 그래서 의학드라마나 수사물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대략 3주 전, 믿기 힘든 부고를 들었다. 지난주 금요일까지만 해도 같은 학교에서 일하던 동료 선생님이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새벽에 교통사고를 당하셨단다. 나 역시 쉽지 않은 주말과 월요일을 보내고 지쳐 있던 와중에 상조회에서 문자로 연락을 받았었다.


보통 상조회에서 오는 연락은 동료 샘들의 부모님들의 부고 소식인 경우가 많아 그런 줄 알았는데, 뭔가 이상해서 다시 읽어보니 동료가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예상치 못한 일에 충격이 크게 다가왔다. 세상이 그대로 일시 정지된 것만 같았다. 마음도 몹시 무거웠다.


불시에 사람에게 수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과 인간의 삶이란 얼마나 유한하고 일시적인가에 대한 생각들이 머리를 떠돌았다. 동료의 부고가 전해준 커다란 상실감이 자꾸만 마음이 깊은 곳으로 내려앉는 것 같았다. 짧은 며칠 동안 인생의 모든 고뇌를 겪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거칠게 남은 상처도 새 살이 돋고 붓기도 가라앉고 나아지겠지만, 아픈 마음과 속상함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이거다 하고 딱 해답이 나와 있는 게 없으니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실의 아픔을 해소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때 디즈니 플러스 채널에서 <더 레지던트>라는 제목의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미국의 의료현장과 민영화된 의료보험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경험해볼 수 있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처럼 모든 의사들이 착하고 뛰어나고 헌신적이기까지 하던 것과는 분위기가 몹시 다르다. 그래서 더 인간적이었다.


이 작품은 뭔가 좀 더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느낌이 들었다. 물론 드라마란 현실과는 매우 다르겠지만 이 드라마 속에는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삶이 표현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 이유는 이마도 흔한 의학드라마에 등장하는 몇 가지의 극적인 질환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등장하는 데다가 예측 못할 여러 가지의 많은 증상과 증례가 소개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레지던트 과정 후반에 들어선 젊은 의사의 눈을 통해 미국 전역의 병원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좋은 사례와 나쁜 사례를 모두 보여주는 흡인력 있는 의학드라마라는 설명에 맞게 평범한 일상의 매 순간이 환자의 생존을 다루고 있다 보니 긴박감이 크게 느껴지기도 했다.


인간의 삶이란 것은 영원을 보장할 수 없고, 때로는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생과 사를 가르는 절체절명의 순간들이 불현듯 찾아오기도 한다. 본래 삶이란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고 당장 죽을 것 같았던 일도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고 잊히기도 한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은 오히려 우리가 더욱 열심히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기에 우리의 생에서 후회를 남기지 않을 수 있게 매일을 그저 충실히 살아내야 하는 방법이 최선인 것 같다.



요즘 유일하게 챙겨보는 뜨거운 씽어즈에서 먀칠 전 남성 중창팀 베테랑이 부른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가 마음에 깊은 울림으로 와닿았다. 그 가사 중 일부를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 /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_조용필, 바람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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