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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출 수 없는 빛, 그 위대한 사랑

그럼에도 눈부신

by Pearl K

고통을 외면하거나 회피하지 않으면서도 문학적으로 아름답게 드러낸 문장이라는 추천과 함께 선물로 받은 책이었다. 새 학기라 마음의 여유가 없다 보니 읽어야 하는데 하고 침대 머리맡에 내내 두었더랬다.


꼬박 두 달이 지난 이제야 한숨 돌리고 책도 펴 볼 시간이 생겼다. 그동안 쌓인 책들이 한두 권이 아니긴 하지만 가장 먼저 손이 간 건 이 책이었다. 일단 <그럼에도 눈부신 계절>이라는 제목부터 마음에 한껏 와닿았었다. 막상 읽으려니 그때로부터 시간이 꽤 지난 바람에 감격은 사라지고 덤덤하게 책을 펼쳤다.


프롤로그 첫 문단부터 왜인지 모를 눈물이 자꾸만 흘렀다. 아픔과 고통을 겪어낸 사람들은 비슷한 것들을 경험하고 느끼게 되어서 그런가 보다. 책을 읽는 동안 저자의 삶 깊숙이 배인 고통 속에서도 더 절실하게 하나님을 바라보고자 하는 자세가 존경스러웠다.


작가는 고통을 쉽게 판단하고 폄훼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히 살아낸 시간을 통해 경험하고 깨달은 것들을 조심스럽게 들려줄 뿐이다. 그 부침이 어떠했을지 짐작조차 하기 힘든 고통을 담은 그녀의 생의 이력이 담긴 글을 읽고 듣는 내내 감히 입을 뗄 수 없었다.

"어쩌면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낸 시간이 많았는지도 모른다."

"삶에 닥쳐온 고난이 고난으로 끝인 듯해도 끝이 아니다. 부정하고자 발버둥 쳐도 살아낸 삶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은혜는 절망 가운데 또 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하나님의 침묵이 세밀한 언어로 내 귀에 새겨진다. 하나님께로 더욱 나아간다. 발갛게 달구어진 얼굴을 주님은 안고 계셨고, 언제나 그러셨듯이 당신의 소멸로 내게 하루를 살아갈 생명을 부여하셨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이사야 41장 10절)"


온몸으로 고통을 부딪쳐 겪으며, 매일 주를 의지하여 치열하게 살아낸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마음을 두드리고, 철옹성 같은 나의 교만을 와해시켰다. 큰 착각과 아집의 탑을 무너뜨렸다. 또 한번 하나님 앞에 서서 매일을 살아내야겠다고 다짐하게 만들었다.


"그분의 뜻이 어디 있는지 알 길은 없지만, 그분이 원하시는 삶은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간다.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누군가의 생명을 구원해 내는 것이나 어떤 거창한 목회 비전이 아니다. 매일매일 그 하루를 살아가는 것, 그 하루의 삶 동안 예수가 없이는 그 무엇 하나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 나 혼자 살아갈 수 있음이 아니라 누군가의 손을 잡고 그 시간을 버텨내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가게 하신다."


우리를 날마다 지독한 생의 고통 속에서도 버텨내게 하는 힘은 오직 예수, 무엇보다 그분의 사랑으로 가능한 일임을 작가는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밀려오는 많은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 날마다 포기를 말하고 입술에 불평과 원망이 가득할 때 나를 돌려세우고 다시 무릎 꿇게 한 것 역시 그리스도의 지독한 사랑이었다.


"비틀거리고 흔들리면서 걸을지라도 예수가 내 안에 있다. 그 예수는 변하지 않는 사랑이다. 깊어지는 사랑이다. 자라나는 사랑이다. 내 안의 예수는 ‘사랑’으로 치환된다."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내 생명까지 너를 사랑하노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사랑하노라.”

“네가 스스로 안다 하는 것보다 내가 너를 더 깊이 잘 안다.”

“너의 모난 구석, 너의 불합리까지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인간에게 주어진 끝날 것 같지 않은 생이 마치 파도의 밀물과 썰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다. 끝없이 밀려들어오는 고뇌와 고통은 밀물이고, 모든 괴로움이 다 사라진 듯 가벼워지고 잠깐의 소강상태를 보이는 것은 썰물과도 같다.


그 많던 고난들이 썰물로 다 빠져나가 잠시나마 가벼워지기 전에는, 사라지는 고통들을 우리 눈으로 보거나 마음으로 느끼기가 때로 너무 힘들다. 그러나 온전한 썰물 상태의 해방감을 느끼기 전까지 바람과 자연을 이용해 끊임없이 파도가 바깥으로 밀려나게 만드는 분은 분명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그 위대한 사랑. 한 사람을 위해 자신이자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 죽게 하신 그 사랑. 우리가 매일 스스로의 보잘것없음을 뼈저리게 느끼며 처절하게 무너질지라도 괜찮다. 그분의 측정조차 불가한 사랑이 결국 우리에게 그럼에도 눈부신 계절을 가져다주는 것임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기억해 내도록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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