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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May 05. 2022

가장 소중한 선물

함께하는 것만으로

나도 장난감 하나에 울고 웃는 어린이였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이제 대부분 선명하진 않지만 아련하게 기분 좋은 추억 같은 느낌으로 남아있다.


   가족과 함께 지내던 아빠가 어느 날부턴가 회사일로 집을 떠나 있게 되었다.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광양이라는 도시에 새로 지어지는 제철소로 근무하러 간다고 했다. 1년 정도 아빠는 집을 비웠고 혼자 남은 엄마는 올망졸망한 삼 남매를 건사하느라 애를 썼다.


   우리는 매주 혹은 격주 주말에나 돌아오는 아빠를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아빠가 올 때마다 손에 가득 종합 선물세트 과자 같은 것들을 들고 오셨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빠가 통화를 할 때면 막냇동생은 "아빠가 없어서 밥을 못 먹겠어." 하며 애교를 부렸다. 그때마다 아빠는 허허하고 웃으며 금방 또 오겠다고 약속하곤 했다.


   아빠가 파견근무를 간 지 반년 정도 지났을 무렵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왔다. 금요일이 크리스마스이브였는데 우리는 선물을 잔뜩 들고 올 아빠를 기대하며  잘 시간이 지난 후에도 계속 안 자겠다고 버텼다. 생각보다 아빠가 오는 시간은 더뎠고 기다리다 지친 우리는 잠이 들어버렸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뺨을 스치는 차가운 공기와 함께 대문이 열렸다. "아빠 왔다!!". 비몽사몽간에 거실로 뛰쳐나갔더니 아빠가 날 꼭 안아주며 까끌까끌한 수염이 가득한 얼굴을 비벼댔다. "앗 따가워." 짐짓 큰 소리를 냈지만 까끌까끌하고 차가운 그 느낌이 싫지 않았다.


   아빠가 한가득 가져온 것은 우리 자매가 노래를 부르던 미미인형이었다. 두 딸을 위해서 미미와 미미의 언니인 미리가 함께 들어있는 세트 구성의 인형을 선물해 주신 거다. 나와 동생은 미미와 미리 마론인형을 각자 하나씩 들고 인형들이 입은 드레스를 비교하며 즐거워했다.

   

   그렇게 다시 만난 가족은 함께 멋진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6개월 후, 5월의 첫날에 우리 가족은 먼저 가 있던 아빠를 따라 새로운 제철소가 지어진 광양이라는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자라오면서 정말 많은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를 보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은 그날 밤늦게 도착하면서도 딸들의 선물을 잊지 않고 챙겨다 주신 아빠였다.


   그때 선물 받은 미미인형 세트는 우리가 동네 목욕탕에 인형을 가지고 가서 놀다가 다 망가져서 더 이상은 가지고 놀 수 없게 되어버렸지만, 따뜻하고 선명했던 추억은 잊히지 않고 기억 속에 그대로 남아있다.

   

   오늘이야말로 소파 방정환 선생님이 어린이날을 만든 취지에 적합한 날이 되기를 바란다.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이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말이다. 무엇보다 가족으로 모여 있는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소중하고 귀한 선물임을 잊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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