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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Jul 06. 2022

지켜주고 싶은 얼굴

아이들이 안전한 사회

1학기를 마무리하는 기말고사가 이제 막 끝났다. 기말고사 종료 다음 날인 오늘 아침부터 아이들이 도서관에 빽빽하게 몰려들기 시작했다.


   시험 이후 방학 전까지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선생님들이 교과와 관련된 책을 읽히시는 경우가 많다. 또 시험이 끝났다는 해방감과 맞물려 그동안 읽지 못한 재미난 책을 읽으려는 아이들로 도서관은 방학 전까지 매일 북적거릴 것 같다.


   쉬는 시간이 겨우 한 번 지났을 뿐인데 벌써 3~40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우르르 다녀갔다. 1학년들 중에서는 바쁜 수업과 수행평가, 과제, 시험, 학원 등의 일정을 쉴 새 없이 쫓아가느라 입학한 지 반년 만에 처음으로 도서관에 와 보는 친구들도 있다.

   

   조금 전 재미난 일이 있었다. 같은 반 아이들끼리 한 반 전체가 우르르 책을 빌리러 왔는데 이 반에 유난히 가수 이름과 동명이인인 친구들이 여러 명이다. 신승훈도 있고 유승우도 이재훈(쿨)도 있다. 심지어 동명이인인 유승우 학생은 진짜 노래를 잘한다며 옆에 있던 같은 반 친구들이 노래해 보라고 부추기기도 했다.


   종 치기 직전에 또 같은 반의 태양이라는 친구가 도서를 대출하러 왔다. ‘태양? 눈, 코, 입 노래가 생각나네’ 하고 말했는데, 태양이가 갑자기 마스크를 벗고 본인의 눈과 코와 입을 들이민다. 당황하기도 웃기기도 해서 눈, 코, 입을 보여달라는 게 아니고 노래 말한 거라고. 여기 공공장소라 마스크 벗으면 안 된다고 했더니 주변 다른 친구들이 와하하하하고 다 같이 웃었다. 민망해진 태양이는 얼굴인식을 해야 하는 줄 알았다고 하더니 황급히 도서관을 빠져나갔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다 보면 때로는 장난이 심하고, 장난치는 의도 자체가 나쁘게 보이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여전히 순수하고 정말 그 나이다운 아이들이라는 걸 느끼는 경우가 더 많다. 사회적 이슈 중에 촉법소년의 연령을 현행 만 14세 이하가 아닌 만 12세 이하로 낮추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되고 있다. 나는 이것이 청소년 범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수단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단지 일시적인 조치일 뿐이다.


   사실 청소년 범죄를 줄이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건 제대로 된 부모교육이다. 얼마 전 실직 한 달 만에 세 가족이 동반 자살한 사건을 기사를 통해 접하게 되었다. 뉴스를 보면서 정말 너무 화가 나고 속상했다. 실직하고 죽음을 선택한 것은 어른들이지 아이가 아니다. 친부모라고 해서 아이의 생명을 마음대로 앗아갈 권리는 없다. 가장 믿고 있었을 친부모에 의해 독살된 아이는 죽는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역사적 사실을 스토리텔링으로 담아내 인기를 끌고 있는 꼬꼬무(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에서도 이런 사건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동반자살이라는 이름으로 친부모에게 살해되어 생을 마감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정말 끔찍하다.

   

   수많은 무고한 아이들의 생명이 아동학대로, 부모의 방임으로, 부모의 살해로 죽어가도 안타까워만 할 뿐,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것이 너무 답답하다. 낙태 문제에 대해서는 생명을 죽이는 거라고 잔인하다고 말하면서, 이미 태어난 아이들의 생명과 안전은 보장해 주지 않는 나라. 출생률을 논하기 전에 이미 태어난 아이들부터 안전하게 지키는 게 순서 아닐까? 이것이 아이들을 대하는 이 나라 어른들의 현주소다.


   학교 안의 아이들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학교 밖의 아이들은 사회적 안전망이 부족한 상태로 방치되고 범죄에까지 노출되고 있다. 감당할 수 없는 문제들로 살기 위해 집을 뛰쳐나올 수밖에 없는 아이들에는 개인의 문제일 뿐이라며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게 부끄럽다. 온통 아이들을 어떻게든 이용하고 내버리는 세상의 현실 속에서는 청소년 범죄가 줄어들래야 줄어들 수 없다. 이건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안전한 사회를 위해서는 성인이 되기 전까지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법과 제도와 실제 안전한 시설들로 갖추어 주어야 한다. 최소한의 기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아동학대에 내몰리지 않고 성범죄에 노출되지 않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아이들이 아이들답게 자랄 수 있도록 더 촘촘하게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시험이 끝난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 가득한 얼굴을 보며, 계속 저런 얼굴들을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아이들 다울 수 있는 사회, 어른들이 감당해야 할 감정들을 아이들에게 풀지 않은 사회, 생존에 대한 걱정들로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는 사회, 어른들의 염려는 어른들이 해결하고, 아이들은 아이답게 살 수 있는 사회. 비교와 차별이 아니라 격려와 인정이 있는 사회.


   누군가는 너무 이상적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한 사회적인 안전망 시스템이 제대로 만들어져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작동된다면, 청소년 범죄율 역시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을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의식 있는 시민들의 노력과 정책입안자들의 제대로 된 입법 행동으로 하루속히 모든 아이들, 청소년들에게 최소한의 안전이 보장되고, 올바른 성인으로 성장할 기회를 얻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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