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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돌보는 힐링의 시간

by Pearl K

여름휴가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풍경은 적어도 내겐 바다다. 어릴 때부터 기회만 있으면 물속에 뛰어드는 걸 좋아했다. 다른 사람이 굳이 부추기지 않아도, 가족들과의 여행에서, 교회학교의 여름수련회에서 물에서 뛰어놀며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고는 했다.


오늘부터 본격적인 나의 여름휴가가 시작된다. 결혼 후 딱 한번 여름에 떠난 제주도 2박 3일 휴가 이후, 남편의 업무 특성상 여름에 휴가를 갈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학기 중에는 연가 사용이 거의 불가능하고 여름이나 겨울 방학 기간에만 휴가를 쓸 수 있는 나와는 타이밍을 맞추기가 매번 최대의 난관이다. 그런 이유로 이번 여름휴가도 말만 휴가이고, 마음껏 여행조차 갈 수가 없어 너무 아쉽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태풍으로 인해 장시간의 비 예보가 예정되어 있단다. 어차피 휴가도 못 가는데 억울함이 조금은 덜어지는 듯도 하다. 예전엔 혼자 떠나는 것도 좋았는데 혼여행도 한 두 번이지 이제 혼자서 가는 건 너무 지겹고 심심해졌다. 무엇을 해야 휴가답게 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어딘가로 떠나는 대신 나만의 힐링 코스로 휴가 일정을 짜 보기로 했다.


힐링 코스의 첫 번째는 각종 뷰티 이벤트다. 겨울 내내 꽁꽁 싸맸던 발을 시원하게 꺼내놓아야 하는 여름에는 패디큐어가 꼭 필요하다. 요즘은 간단히 붙이는 패디 제품들도 많이 나와 있어서 마음에 드는 디자인만 잘 고르면 된다. 올영에서 푸른 바다가 생각나고 해변가 모래사장이 잘 표현된 패디를 득템 했다. 올해 유난히 사건사고가 많아 뼈가 부러지고, 패인 상처가 나고, 발목이 삐는 등 고생한 내 발에 딱 맞게 잘 붙여주었다.


다음은 여자들이 답답할 때 가장 많이 하는 것,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손 볼 차례다. 두피를 자극하고 푸석푸석해지고 건조한 헤어를 관리받고 깔끔하게 스타일을 다듬는다. 시원한 아로마 마사지까지 받고 나면 뭔가 대접받는 느낌이 들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고 텐션이 올라간다.


두 번째 힐링 코스는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차례차례 만나는 거다. 각자의 바쁜 일정으로 얼굴 보기 힘들었던 사람들과의 다정한 만남과 맛있는 식사, 재미난 수다까지. 비 소식 때문에 멀리 가긴 힘들어서 근처에 있는 사람들을 잠깐씩이나마 만나기로 했다. 이렇게라도 시간을 내지 않으면 몇 년에 한 번 얼굴 보기도 힘들기에 지금이 거의 유일한 기회다. 또 보고 싶었던 문화생활들 영화와 공연과 콘서트, 전시관람 등을 잔뜩 하는 것도 예정되어 있다.


세 번째 힐링코스는 병원 투어다. 업무 특성상 어깨와 팔, 손가락 근육들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편이고 자연스럽게 일자목과 거북목도 심해져서, 이렇게 휴일이 생기면 틈틈이 정형외과를 찾아 도수치료를 받는다. 몇 년 전만 해도 15회를 넘겨야 겨우 정상으로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그래도 7~8회 정도에서 증상을 조절할 수 있을 것 같다. 도수치료를 받는 동안에는 어마어마하게 아파서 나의 살려달라는 비명으로 치료실이 가득 채워진다. 받을 땐 아프지만 확실히 짧아지거나 늘어나 있던 근육들이 제자리를 찾으면 시원하고 가벼워진다.



예전에는 쉬는 것 자체를 불편해했었다. 열이 40도까지 올라도 조퇴 같은 건 쓰지 않았고, 너무 아파 약국에서 약을 사 먹고 끙끙거릴지언정 병원을 잘 가지 않았다. 그런데 2009년 겨울쯤 원치 않게 안면마비가 온 이후로는 달라졌다. 조금만 몸이 이상해도 바로 병원을 찾아가 적절한 치료를 받아 내 몸이 충분히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주려고 한다. 아프지만 참으면서 일했던 그 시간들이 내 몸에 얼마나 큰 무리가 되었던 건지 크게 느꼈었기 때문이다.

올해로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딱 20년째다. 최선을 다해 살아왔지만 쉬지 않고 일하다 얻은 것은 망가져 버린 몸과 너덜너덜해져 버린 마음이었다. 지난 20년 동안 수많은 병명들을 진단받고 수술하고 회복해 내면서 내가 깨달았던 건 몸의 신호를 잘 캐치하고 필요한 때에 적절히 쉬어주고 자신을 돌봐주어야 한다는 거였다. 사람의 몸은 기계가 아니기에 오랜 시간 건강히 일하려면 꾸준한 관리와 돌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내 몸과 마음은 내가 가장 아껴주어야 한다.


며칠 전 이런 문구를 보았다. "친절함과 성실함은 체력에서 나오고, 여유로움과 밝은 성격은 통장에서 나온다." 나도 그랬었지만 쉬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쉬어본 적이 없으니 어떻게 쉬는지를 잘 모른다. 정말로 쉬어야 할 때 도리어 무리하다가 더 큰 아픔을 겪게 되기도 한다.


제대로 쉬는 것은 중요하다. 충분히 쉬고 충전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건강하고 행복하고 삶에 신체적, 정신적인 여유가 있어야 다른 이들에게도 그런 여유를 나누어 줄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내게 주어진 일주일의 여름휴가, 이 시간을 제대로 쉬어주면서 나를 돌보고 회복하는 재충전의 시간으로 삼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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