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by Pearl K

저 이제 알았어요. 그동안 사소하게 눈썹을 못 그린 정도가 아니라 아주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찾지도 않고 방치해 두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니까요. 나 참..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너무 힘에 부쳐서 아 안 되겠다 못 참겠다 하고 도망간 게 사실은 가슴속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방이었거든요.


그 방에서도 자꾸 속살거리는 잔소리들이 들려와서 잘 보이지도 않는 조그마한 문으로 기어 올라갔더랬습니다. 그곳은 꽁꽁 숨겨져 있던 다락방이었어요. 겨우 사람 하나가 딱 몸을 굽혀 들어갈만한 그런 곳이요. 잔뜩 구푸린 자세로 고개를 파묻고 귀를 막았죠. 한참을 그렇게 웅크린 채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몰라요.


혹여나 낮은 천장에 머리를 박을까 조심조심 고개를 들고, 시끄럽고 복잡한 소리들이 여전히 들려온다면 언제라도 도망갈 기세로 귀를 막았던 손을 조심스럽게 치워보았어요. 마치 세상에 나 혼자만 남은 것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고요해졌어요. 그걸 알고 나니까 웃긴 게 또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정말 이 세상에 나 혼자만 남았을까 봐 무섭더라고요.


몸을 돌릴 곳조차 없는 작은 다락방에 잔뜩 구겨져 있던 몸을 펴고 조금씩 바깥으로 나가보기로 했어요. 들어올 때는 이렇게 깊은지도 몰랐는데 막상 나갈 길을 찾으려니 가도 가도 출구가 안 보이는 거예요. 사람이 원래 그런 상황에서는 어마어마한 긴장감과 초조함을 느끼게 되는 법이잖아요. 다급한 마음에 출구가 대체 이쪽에 있나 저쪽에 있나 여기저기 찾아 헤매다가 오히려 길을 잃어버렸지 뭐예요.


에라 모르겠다 하고 주저앉아 버렸어요. 까딱까딱 몸을 흔들면서 멍하니 그 단순한 리듬에 몸을 맡기고 있었죠. 그쯤 되니까 못 나가면 어쩔 수 없지 하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또 아침인지 저녁인지 낮인지 밤인지 모를 시간이 지나갔어요. 어디선가 똑똑하는 소리가 들려와서 귀를 기울였죠. '너 거기에 있어? 괜찮아 이제 나와도 돼.'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가보고 싶은 마음과 그냥 모든 걸 잊고 이 자리에서 멍하니 나만의 리듬이나 타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고민이 시작됐어요. 문밖에 누가 있을지 두렵긴 했지만 결국 천천히 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해 나가 보기로 했답니다. 가까워질수록 노크하는 소리는 더 크게 들려왔고, 내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죠.


다시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저는 반대쪽 편에서 똑똑똑 하고 문을 세 번 두들겨 대답을 했어요. '무서워하지 마. 나는 너의 편이야. 너는 이제 안전해' 도저히 문을 열 용기가 잘 안 나서 꽤나 망설였지만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눈을 꼭 감고 팔에 힘을 주어 문을 활짝 열었답니다.


앗 눈부셔! 꽉 닫혀 있던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리고 문틈 사이로 빛이 한 번에 새어 들어와 눈이 부셨어요. 어둠 속에 계속 있다 보니 빛에 익숙해지는 데는 역시나 시간이 필요하더라고요. 저는 조심스럽게 빛 속으로 발을 옮겼어요. 너무 오래 쭈그리고 있어서 온몸이 뻐근하고 다리도 아팠지만 마침내 잠겨있던 문의 빗장을 열고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어요. 막상 나와보니 제가 두려워했던 사람들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어요.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많이 달라져 있었어요. 선선하고 시원한 바람과 눈부신 햇살, 재잘대는 새소리, 하늘을 온통 붉게 물들이는 저녁 무렵의 노을. 아름다웠어요. 세상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구나를 새삼스럽게 느꼈어요. 이제 새로운 마음으로 내가 누릴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스스로를 깊이 가두고 있던 시간 동안 내가 무엇을 놓쳤는지보다는 더 얻은 것에 집중하려고 해요.


이렇게 지금까지 잃어버렸던 나 자신을 다시 찾게 된 이야기를 들려드렸어요. 언젠가 또 숨고 싶어질 때가 올 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나답게 지낼 수 있는 곳을 찾아 좀 더 나다울 수 있는 매일을 살아가 보려고 해요. 어렵게 용기를 낸 만큼 후회하지 않으려고요. 긴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