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깨문 입술 위로 마음속에서 깊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들이 휘두르는 무차별 폭력은 참을 수 없게 아팠지만, 걔네들 앞에서 울지 않겠다고 결심한 건 내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입술을 꾹 깨물고 고개를 숙이고 이 고통스러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랬다. 드디어 오늘치의 폭력이 끝났다.
아이들이 모두 하교한 학교의 텅 빈 샤워실. 흐트러진 교복의 매무새를 가다듬고 헝클어진 머리를 다시 묶었다. 학교 건물이 가득한 부지를 벗어나 집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그제야 삼켰던 비명이 눈물이 되어 북받치게 흘러내렸다. 오하루 작가의 첫 소설 <ㅈㅅㅋㄹ>을 읽으며 그때가 떠올랐다.
언제쯤 이 고통이 끝날까? 계속 이런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 걸까? 아무도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는 것만 같아.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은 시간 속에 홀로 남겨진 세상은 너무 끔찍했다. 이렇게 삶이 지옥 같다면 내가 먼저 이 세상을 떠나는 게 모두에게 행복한 결론일 거란 생각을 수없이 했다. 칼로 손목을 긋고, 손바닥을 그었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렸다가 생명을 잃는 대신 무릎에 가벼운 찰과상을 입기도 했다.
그때의 내가 K와 소유와 경식이를 만났다면 행복해지는 방법을 조금 더 일찍 알 수 있었을까. 책을 읽는 동안 소유의 이야기를 읽으며 모두에게 투명인간처럼 잊혔던 시간이 생각나 울었다. K의 이야기를 읽으며 먼저 보내야만 했던 안타까운 아이들이 생각나 또 울었다. 경식이의 이야기를 읽으며 지금도 부모라는 이름으로 저지르는 무수한 폭력 속에 노출된 아이들이 있다는 게 생각나 다시 많이 아팠다.
중간중간 눈물을 닦느라 224페이지 분량의 두껍지 않은 책인데도 읽는데 두 시간이나 걸렸다. 처음엔 우느라 바빴지만 책을 읽어갈수록 미소를 찾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살아주어서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 책 속에서 소유와 경식이 그리고 K는 아픔 끝에서 희망을 만나고, 지옥 끝에서 천국으로 걸어 들어간 그 힘으로 자기들과 비슷하지만 또 다른 지옥을 겪고 있는 다른 친구들을 살리고 있었다.
<ㅈㅅㅋㄹ>이라는 책 제목을 보았을 때 도대체 무슨 뜻일까 추측하느라 머리가 아팠다. 떠올렸던 제목이 진짜 그런 게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주인공인 아이들의 활약을 보며 다른 일들로 너무 지쳐 까맣게 잊고 있던 게 생각났다. 나 역시 학창 시절에 비슷한 고통과 지옥을 경험했고, 그걸 계기로 아이들을 살리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것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 내 첫 마음을 되새길 수 있었다. 청소년 시기에 겪었던 고통이 어떤 느낌이었는지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아이들을 살리겠다고 하면서 사실은 나조차 살지 못하고 있었다는 깊은 반성을 했다. 오하루 작가님의 소설이 소설 안에서처럼 소설 밖의 현실에서 아이들을 살리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고민을 털어놓을 곳이 없어 답답한 아이들에게 이 책을 꼭 추천해 주어야겠다.
책에서 인상에 깊이 남았던 대화 하나가 있었다. “제 삶에 봄은 안 올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렇게 안 올 것처럼 왔네요.”, “그래. 겨울이 지나면 봄은 오는데, 봄이 절대 안 올 것 같은 겨울이 있지.”
봄이 절대 안 올 것 같은 겨울을 사는 아이들에게 살아 있으면 꼭!! 봄이 온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누구에게나 봄이 온다고. 죽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힘들 땐 쉬어가더라도 너에게도 반드시 도착할 그 봄을 함께 잘 기다려 보자고 말이다.
*이 글은 올해 쓰는 117번째의 생활글이다. 공교롭게도 117은 학교폭력 신고전화번호이기도 하다. 신기한 우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