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있는 하준이 형이 내 삶의 고수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는 전혀 생각도 해보지 못한 색다른 존재. 없다고 아쉬울 것도, 있어도 부러울 것도 없는 존재가 문득 내 앞에 있다.'
평범하고 지루하기까지 한 직장생활로 적금을 모아 주변의 만류를 무릅쓰고 구입한 첫 집 타운하우스. 그곳에서 주인공은 학창 시절 좋아했던 음악을 부른 트러스트의 강하준과 만난다.
강하준이 내 옆집에 산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것도 잠시였다. 하준을 만나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폭풍과도 같이 일어나고, 어느새 내가 그 모든 상황의 중심에 놓이게 되면서 나의 삶은 예상치 못하게 흘러가기 시작한다.
그가 쓴 대본으로 함께 뮤지컬 공연을 준비했던 인연이 있는 박희종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워낙 글을 잘 쓰는 것도 알고 있었고, 꾸준히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것도 알고 있었다. 막상 책으로 나온 결과물을 보고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엔 그저 앞장이라도 좀 읽어보자고 폈는데 도무지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그대로 책을 들고 출근을 했고, 틈틈이 짬을 내어 읽어 내려갔다. 오랜만에 몰입감 쩌는 소설이었다.
아마 나도 좋아하던 가수와의 만남이라는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는 내내 그 안에 담긴 수많은 가사들을 노래로 직접 들어보고 싶었다. 혼자 그 노래들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재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야기 속에 담긴 무언가가 내 마음을 두드렸다. 익숙한 삶을 지속해야 할지, 아니면 새로운 변화를 선택할 지에 대해 고민 중인 시점이라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특히 '아무리 빛나는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해도... 수많은 과정을 묵묵히 수행해 나갈 끈기와 의지가 필요하거든. 그래서 좋은 예술가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빛나는 재능보다 끈기와 성실이라고 생각해.'라는 문장이 내게 깊이 다가왔다.
고3 때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선생님이 내게 돌려준 말은 성실하긴 한데 끼가 없다는 말이었다. 나는 좌절하여 내가 그 꿈을 지속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 속에서는 정확히 반대 지점에서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것은 수많은 예술가들이 동일하게 고백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끼와 재능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성실하고 꾸준하게 그것을 해내는 것이라고. 작곡은 엉덩이 힘으로 한다는 말이 있다.
결국 예술이나 창작이라는 것은 찰나의 번뜩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꾸준히 쌓아온 시간들의 총합이 모여 더욱 빛나는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빛나던 청춘을 그리워하거나, 현실의 청춘을 살아내려 최선을 다해 애쓰거나, 새로운 청춘의 시작을 준비하는 이들이었다. 그러고 보면 요즘은 청춘이라는 단어가 푸릇푸릇함보다는 고통스럽고 어려운 단어가 되어버린 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은 치열한 고민과 고독의 시간 속에서 자신의 청춘을 찾아가는 사람들이라고 여겨졌다.
책을 읽고 난 후, 리뷰를 쓰면서 최근 자주 듣는 '청춘'이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때론 넘어지고 고독하고 엇갈리고 길을 잃고
방황하고 불안해 눈물 흘리고
음~ 끝날 것 같지 않아 청춘의 무게
꿈을 꾸고 사랑하고 용기내고 마침내 꽃은 피고
빛을 품고 희망을 함께 더하면
음~ 끝날 것 같지 않던 청춘의 이름
나름대로 열심히 걸어왔는데
늘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는 걸까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보면
행복이란 그 섬에 우리, 도착할 수 있을까
지나가면 다가오고 다가가면 또 멀어지는
끝을 알 수 없어 더 가보고 싶어 져 청춘
비워내면 채워지고 채워지면 또 사라지는
잡아둘 수 없어 더 소중한 우리들의 청춘"
화려 했던, 치열했던, 알지 못했던 청춘의 무게를 겪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삶을 통해 나의 청춘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단지 소설 속의 이야기일 뿐일지도 모르지만, 앞으로의 삶을 고민하고 있을 수많은 청춘들에게 용기를 내라는 이야기 대신 이 문장을 전하며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지금까지의 내 삶도 마치 내가 그렸던 원 데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흐릿하고 밋밋한 선들이지만, 그 선이 모여서 어떤 나를 만들지는 아직 모르는 것이라고. 나는 지금까지 그저 열심히 선들을 쌓아가고 있었던 것이기에, 앞으로 드러날 나의 모습은 아직 모르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