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모의 노래 가사처럼 지난 몇 년간의 겨울은 내게 너무도 길었다. 각종 어려움과 코로나까지 더해져 더 길어진 겨울을 겨우 빠져나와 맞이한 2022년에는 눈코 뜰 새 없이 커다란 가족 행사들이 줄줄이 예약되어 있었다.
집집마다 그렇겠지만 설, 추석 두 번의 큰 명절과 양가 부모님의 생신, 결혼기념일, 직계가족들의 생일까지 다 챙기고 나면 1년 내내 11월 한 달을 제외하고는 쉬는 달이 없었다. 거기에 올해는 시어머니의 칠순과 친정엄마의 칠순 잔치가 있는 해다. 공교롭게도 두 분이 동갑내기 셔서 무엇이든 겹치기로 온다. 심지어 양가 부모님이 결혼하신 해도 같아 은혼식이나 금혼식도 같은 해일 수밖에 없다.
다행히 친정 아빠는 4년 전에 간단하게 칠순 행사를 치렀다. 하지만 어머님들의 칠순은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자식들이 어떻게 축하를 해 주었는지 사방에서 거론될 테니까 말이다. 게다가 해를 넘긴 다음 해 1월이 되자 마자는 시아버님의 칠순이 예정되어 있다. 그야말로 올해는 칠순의 늪에 빠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평균수명이 80세까지 늘었고, 어르신들은 특히나 조심해야 하는 위드 코로나의 상황 속에서 칠순을 준비하는 것은 녹록지 않았다. 가족들을 모두 초대하는 성대한 규모의 잔치보다는, 식사와 선물의 격을 높이는 디테일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이 모든 행사의 준비과정 속에서 남편도 나름 노력했지만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유일한 외며느리이자 큰딸로 양가의 행사를 주도해야 할 내게 가장 도움이 되었던 두 사람은 나의 여동생과 그의 여동생, 처제와 아가씨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두 여동생이었다. 시어머님의 칠순을 준비할 때는 식사 장소부터 선물의 종류나 모시고 쇼핑을 할 공간, 거기에 칠순 기념 케이크와 축하 현수막, 토퍼, 꽃다발에 이르기까지 아가씨가 함께 선택해 주었다.
결혼을 준비할 때부터 언니가 생긴다며 좋아했고, 워낙 착한 심성이라 한 번도 얼굴을 붉힌 적 없는 흔치 않은 시누이다.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때마다 잊지 않고 내 선물을 준비해서 건네주기도 하는 착한 시누이 기도 하다. 사실은 큰 행사를 준비하며 서로 마음이 상하거나 틀어질 수 있음에도, 의견을 무사히 정리하여 어머님의 칠순을 기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덕분에 내년 초 아버님의 칠순도 지금 순조롭게 준비 중이니 더욱 고맙다.
그러고 보니 처음 결혼하고 난 직후부터 매년 어머님이나 아버님 생신 때마다 아가씨의 도움이 있었다. 현재 부족한 것이나 어머님 아버님이 필요로 하시는 것들이 뭔지 내게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이거 사주세요” 했으면 불쾌했을 텐데, “엄마가 요즘에 이걸 다 쓰신 것 같더라고요. 언니가 생각한 다른 게 있으면 그것도 좋고요.”라며 조율해 주어 시부모님과의 관계를 더 돈독하게 만드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었다.
친정엄마의 칠순을 준비하는 건 여동생과 함께 많은 부분을 정했다. 친오빠가 있긴 하지만 워낙 가족들에 관심이 없는 스타일이고, 작년에 새롭게 가족이 된 올케에게는 임신 초기다 보니 많은 부분을 요청할 수가 없어 나와 여동생이 알아서 준비하기로 했다. 혼자 결정하기 애매한 순간마다 여동생이 교통정리를 해 주었고, 덕분에 친정엄마가 행복해하시는 칠순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
한 가지 불편한 게 있다면 ‘아가씨’라는 명칭 자체가 좀 많이 불편하다. 아가씨라고 부를 때마다 목에 무언가가 턱턱 걸리는 느낌이다. 처제처럼 여동생인 시누이를 지칭하는 다른 명칭이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냥 이름을 불러도 된다고는 했지만, 어른들이 계실 때 그렇게 부르는 건 아무래도 조금은 눈치가 보인다. 지금까지처럼 편하게 잘 지내고 싶은데 오히려 불편한 명칭이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거 하나가 언제나 참 아쉬운 지점이다.
생각해 보니, 동갑내기인 양가의 두 여동생 덕분에 부담스러울 수 있는 큰 행사들이 원활하게 잘 마무리될 수 있었던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이 크다. 2022년 한 해 동안 두 여동생과 많은 결정을 같이 공유할 수 있어서 너무너무 고마웠어!! 이런 고마운 마음이 있으면서도 충분히 표현하진 못했던 것 같아서 연말을 맞아 뒤늦게 작은 선물로라도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