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대 아이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일단 잘 먹이는 게 최우선이다. 아이들이 절대 거부할 수 없는 음식을 꼽자면 1순위가 떡볶이, 그다음은 치킨, 피자 순이다. 한참 성장기라서 그런지 청소년 아이들은 항상 배가 고픈 편인 것 같다.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이냐고 물으면 주저하지 않고 ‘맛있는 거 주는 사람이요!’ 하고 대답한다.
청소년부 선생님을 맡게 되었을 때였다. 오랫동안 봉사해 오셨던 선생님들이 내게 제일 먼저 알려주신 건 교회 근처의 떡볶이 맛집 자매분식과 따봉 하우스였다. 두 곳 모두 주머니 사정이 빈약한 청년 선생님들이 한창 먹는 나이의 중학생들을 데리고 가기 좋은 곳이었다.
먼저 자매분식은 가건물 같은 공간의 구멍가게였다. 얼마나 작고 낮은지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머리가 천장에 닿을 정도였다. 자매분식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가수 이세준(유리상자)을 닮은 키가 자그맣고 안경 쓰신 아저씨가 운영을 하셨다. 떡볶이와 더불어 다양한 컵밥이 특이하고 맛있었다.
따봉 하우스는 할머니 두 분이 함께 운영하시던 곳이다. 즉석떡볶이를 주로 파셨는데 가장 인기 있었던 건 피자 떡볶이였다. 아이들을 앉혀 놓고 떡볶이가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분식집의 상징과도 같은 초록색 접시에 단무지를 잔뜩 담아 테이블마다 하나씩 놔주기도 했다.
맛있는 떡볶이 앞에 아이들의 마음은 무장 해제된다. 따로 묻지 않아도 미주알고주알 자신들의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나누었던 수많은 말들은 교회 예배 후 소그룹 시간에 나누었던 어떤 이야기보다도 아이들의 삶을 솔직하게 드러내 주는 이야기들이었다. 자매분식과 따봉 하우스는 초보 선생님이었던 내게 아이들과의 친밀감을 업그레이드시켜 주고, 가벼운 지갑마저도 뿌듯하게 해주는 곳이었다.
몇 년 전 고등부에서 만난 아영이 와도 그렇게 친해지게 되었다. 당시 고2 여학생반 담임을 맡게 된 나는 아이들의 출결 때문에 꽤 신경을 써야 했다. 경기도에서 서울에 있는 특성화고까지 매일 통학하던 아영이는 항상 잠이 부족했고, 그 이유로 주일 아침에 예배를 드리러 오는 것이 들쭉날쭉했다. 또 다른 우리 반 세원이는 멀리서 교회를 다녔는데 본인도 건강이 약하고 태워다 주시는 아버님도 자주 아프셨다.
꾸준히 나오는 친구는 윤지 한 명뿐이었는데, 윤지도 혼자 일대일로 소그룹을 하자니 어색해서 예배만 드리고 자주 사라지곤 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주말을 앞두고 이번 주에는 꼭 나와서 다 같이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고 문자로 약속을 했다. 그래도 안 나오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그날은 아영이도 세원이도 윤지도 모두 잊지 않고 약속을 지켜 예배 출석을 했다.
예배가 끝나기 무섭게 우리는 곧바로 떡볶이 뷔페로 갔다. 셀프로 만들어 먹는 떡볶이에 다양한 양념과 국물 어묵과 각종 튀김까지 가득한 가게였다. 떡볶이를 먹고 싶다던 아이들은 의외로 매운 것을 못 먹는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의 취향에 따라 떡볶이 양념을 제조해야 했다. 맛있게 먹으면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넉넉하게 나눌 수 있었다.
그다음부터 아영이 세원이 윤지는 최선을 다해 예배에 참석했다. 상황을 알고 있기에 그렇게 노력해 주는 아이들이 참 예쁘고 고마웠다. 한 가지 생각하지 못했던 점은 그날 이후로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고 매주 아영이가 조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결국 선생님의 지갑 사정을 고려하여 한 달에 한 번만 가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고, 아이들은 예배에 제대로 참석하겠다는 약속을 최대한 지켜주었다.
그동안 떡볶이, 짜장면, 치킨, 피자, 고기 뷔페, 햄버거 등 여러 가지 메뉴를 시도해 보았지만, 아이들과의 친밀함을 끌어올려 주는 것은 역시나 떡볶이가 최고였다는 생각이 든다. 함께 떡볶이를 먹고, 매운 입을 달래 가며 쿨피스를 마시고, 쓸데없어 보이지만 매우 쓸 데 있는 대화를 나누던 시간은 나와 아이들 모두에게 삶의 기분 좋은 추억을 남겨주었다.
먹거리가 풍성하다 못해 넘쳐날 정도로 많아져서 요즘 아이들은 음식 귀한 줄 모른다고 말하는 어른들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잘 먹이는 것이 먼저다. 입이 열리면 마음도 열린다. 앞으로도 만나는 청소년들을 잘 먹이고 잘 다독이면서 그들 곁에서 아이들을 살리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p.s: 안타깝게도 부모가 하면 이 방법이 잘 통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