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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Jan 04. 2023

모두의 방학

어린 시절 나에게 방학이란 학교를 가지 않고 마음껏 늦잠을 잘 수 있는 시기였다. 물론 그 늦잠도 늘 해가 중천에 떴다며 일찌감치 깨우는 엄마, 아빠로 인해 충분히 누릴 수 없었다. 막상 일어나 보면 해가 중천은커녕 아침 8시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덕분에 방학 내내 입이 댓 발쯤은 나와 있었던 것 같다.


부모님은 아침형 인간에 부지런한 스타일이신데 나는 기본적으로 야행성의 감각을 탑재하고 있다 보니, 늦게 자는 게 익숙했고 덕분에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는 걸 언제나 가장 힘들어했다. 오죽하면 밤 근무를 하고 와서 아침부터 자러 들어가는 아빠를 제일 부러워했었다. 밤에 근무하시느라 아빠가 한숨도 못 잤다는 건 미처 생각도 못 했던 것 같다.


   사회인이 되어 일반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방학은 참 부러운 시간이었다. 직장인에게 방학이란 그저 똑같은 출근일일뿐이니까. 여름과 겨울방학의 시기가 오고 출퇴근 시간에 대중교통에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보이지 않게 되면, 와 좋겠다 방학도 하고 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학생들이 빠져 준 덕분에 방학에는 그나마 출퇴근이 조금 여유로웠던 것도 같다.


   그 후 학교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방학은 내게 언제나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는 단어였다. 선생이지만 선생이 아닌 직종으로 일하고 있다 보니 학기가 마무리되고 방학 시즌이 다가오면 왠지 모르게 많이 억울해졌었다. 방학식을 마치고 같이 일하는 선생님들이 “방학 잘 보내세요”하고 인사를 하면 왠지 잔뜩 꼬여서 “저는 방학이 없는데요. 저도 방학하고 싶어요.”라고 괜한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유일하게 방학 때만 사용할 수 있는 연차도 언제나 눈치를 보면서 써야 했고, 직무에 필요한 연수를 듣는 것조차도 관리자가 허락해야지만 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방학 중에는 급식이 제공되지 않으니 매일 출근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식사를 어떻게 할지가 가장 큰 문제였다.-일반 회사와는 달리 점심시간에 밥을 먹으러 학교 밖으로 나가려면 매번 외출 복무를 달고 나가야 한다.


   그러다 보니 방학 중 점심식사와 관련하여 서러운 일이 아주 자주 일어나는 때가 방학이기도 했다. 보통은 당직근무자들과 함께 주로 배달시켜 먹는 편인데, 1인실에서 일하다 보니 나의 출근여부를 아무도 모르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내가 먼저 전화하거나 메시지를 보내 확인해보지 않으면 점심시간마다 모두에게 잊히기도 했다. 가끔은 단체로 약속이 있어서 나가면서 내게 말해주지 않아 기다리면서 내내 배를 곯은 적도 있었다.


   사실 정말 별것 아닌데, 약속이 있어 나간다고 한마디만 해 주었어도 좋았을 텐데 그런 사소한 일들이 쌓이고 쌓여 내게는 작은 트라우마가 되었던 것 같다. 지금은 마음이 맞는 샘들이 계셔서 미리 챙겨주시기도 하고, 내가 잊지 않고 물어보기도 한다. 무엇보다 내돈내산으로 사무실에 전자레인지를 하나 들여놓으니 부담도 덜하고 훨씬 편해졌다.


   요즘 내게 방학은 재충전의 시간이다. 물론 매일 출근해야 하지만 주요 업무는 방학식 전까지 되도록 마무리해 두고, 방학에는 나를 돌보는 시간을 더 가지려고 한다. 해야 할 일들을 하면서 틈틈이 쉬어주기도 하는 것이 그 첫 번째다. 또 직무에 관련된 연수를 들으면서 전문성을 신장시키기도 한다.


   물론 방학 기간 중에 출근하지 않고 연차를 사용하는 날도 며칠은 있다. 그럴 때는 하루 종일 강아지와 집에서 놀기도 하고, 그동안 시간이 안 맞아 미뤄 두었던 병원의 진료를 받거나, 평일 낮에 바깥을 걸어 다니는 즐거움을 누리기도 한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들과 동료샘들을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수다를 떠는 것은 빠뜨릴 수 없는 시간이다.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방학의 의미는 시기마다 상황마다 각각 다를 것이다. 누구의 어떤 방학이든 그 시간을 통해 즐거운 추억을 하나씩 더 쌓을 수 있다면 가장 좋은 방학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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