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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Jan 20. 2023

나를 돌보는 시간

누군가에게 평가를 당하는 일은 언제나 긴장감을 유발한다. 분명 이전에 다 해보았고 잘 해냈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평가당하는 입장에 서면 준비했던 모든 것들이 부족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리 심호흡을 해도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기가 힘들다.


   나름 편안하게 잘 마무리했다고 생각했는데, 내 몸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헤어숍에 가서 푸석푸석 건조해진 머릿결에 영양분을 더해주는 클리닉을 받았다. 헤어클리닉과 함께 굳어버린 목과 뭉쳐버린 어깨를 부드럽게 해 주는 아로마 마사지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까지 마음과 에너지를 많이 썼다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기운이 쭉 빠지는 걸 보니 오늘 하루 꽤 긴장하고 굳어있었나 보다. 격하게 나를 반겨주는 하얗고 몽글몽글한 털을 가진 사랑스럽고도 따스한 생명체를 안고 소파에 몸을 뉘었다.


   그대로 눈을 감고 있었는데 몸이 소파 안으로 녹아내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아무도 깨울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들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붉은색의 음식 두 가지를 만들어 에너지를 보충한 후, 뜨끈뜨끈한 물에 발을 담갔다.


   도수치료해 주시는 물리치료사 선생님의 신신당부 덕분이었다. 발목 아킬레스건이 긴장되어 있으니 꼭 족욕도 하고 따뜻하게 풀어주어야 한다고, 그래야 다음 치료도 수월하게 받을 수 있다고 하셔서 오늘은 선생님의 권고를 잘 듣기로 했다. 따끈한 물에 발을 담그는 순간 온몸으로 퍼지는 온기에 입에서 저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내가 헌신하는 대상에게 온 마음을 다 쏟고 그럴 수 있는 것으로 충만했던 날들이 있었다. 단 한순간도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는데, 내게 남은 건 소진되어 버린 열정과 망가진 건강뿐이었다.

   

   너무 늦기 전에 스스로를 돌보고 챙겨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깨달았어야 했다. 충분히 자신을 아껴주지 못하고 천하무적이라도 된 것처럼 앞을 향해 달려가기만 한 건 내 잘못이었다. 미련하게도 모든 것을 잃어버린 후에야 배울 수 있었다.


   최근 몇 년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강제적인 무기력의 상태에서 오히려 쉼을 얻었고, 나를 돌보는 방법도 몇 가지 터득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달라지려고 한다. 내가 믿고 추구하는 가치에 헌신하더라도 나다움을 잃지 않고, 스스로를 아끼며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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