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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가 불러 낸 기억

by Pearl K

며칠 전이었다. 출근을 하려고 평소처럼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공기마다 작은 물방울들이 가득 고여 있는 듯한 밀도 짙은 냄새가 났다. 고개를 들어보니 바깥은 안개로 뒤덮여 시야가 뿌옇게 보일 정도였다.


냄새는 기억을 발현한다는 말이 있다. 인간의 오감 중에서도 특히 후각과 청각은 우리의 시간을 과거의 어느 날로 너무도 간단히 되돌리기도 한다.


그 아이가 세상에 첫울음을 터뜨리며 태어난 곳은 포항 송도였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 사글세집에서 첫 신혼생활을 시작한 부부는 결혼한 지 채 3년이 못 되어 두 아이를 연년생으로 얻었다. 문제는 둘째가 타고난 태열로 예민해져 잠들지 못하고 밤새 울어대는 아이였다는 것이었다.

당시 집주인에게도 부부의 둘째 아이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아기가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밤마다 울어대는 둘째로 인해 주인댁 아이는 연쇄반응을 일으켜 자주 깼고 더 심하게 울었다. 덕분에 세 들어 살던 아이 엄마는 집주인의 눈치를 꽤 많이 보아야만 했다.

쉬이 잠들지 못하고 우는 아이를 둘러업고, 아이 엄마는 집 근처를 벗어나 하염없이 배회했다. 포대기에 아직 어린 둘째를 감싸 안고 집에서 지척인 송도 해수욕장의 모래사장과 나무 사이를 거닐며, 그저 아이가 울음을 그치고 잠들어주기를 기도했다.

온몸이 붉어질 정도로 열이 올라 가렵고 따가음에 잠들지 못하던 아이는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차차 울음을 그쳤고, 다행히 엄마의 등 위에서 쌔근쌔근 잠들었다. 그렇게 내 영혼에 새겨진 첫 냄새는 엄마가 우는 나를 업고 토닥이며 달래어 주던 새벽 바다의 냄새였다.

약간의 짭짤한 소금향과 수분이 가득 담겨 있어 조금은 비릿하지만 분명한 청량함을 가져다주는 바다의 냄새. 그 냄새는 꽤나 강렬해서 기억조차 못하는 시간을 아련한 감각으로 소환해 주었다.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마음이 지칠 때마다 왠지 바다가 그리워졌던 건 그때의 바다 냄새가 차마 휘발되지 못한 채 내 안에서 남겨져 있기 때문이리라.


안개향이 불러다 준 기억 속에서 나는 잠시 시간을 잊고, 수분감 가득한 청량한 냄새가 몸 안 가득 채워지도록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 순간 앞으로 다가올 어떤 일이라도 기쁘게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다. 온통 메말랐던 시절도 이 안개를 통과하고 난 후, 더 촉촉하고 선명하게 펼쳐지기를, 그럴 수 있는 내일의 삶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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