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작은 불꽃이 발화한 것은 언제였을까.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작았던 불꽃은 미처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점점 자라났다. 안에서부터 타올라 바짝바짝 메마르고 건조해진 마음에는 쉽게 금이 생겼다.
때때로 마음을 괴롭히는 일이 있을 때마다 엷은 금 사이로 불꽃이 새어 나와 일렁거렸고, 결국 뜨거운 열기를 견디지 못해 금들은 커다란 균열을 내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갈라진 균열 사이로 자유를 찾은 불꽃은 활활 타올라 나를 온통 집어삼켰다.
불길에 삼켜진 나는 끊임없이 타오르는 불이 되었다. 멀리서 보면 따뜻하게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그 뜨거움에 깜짝 놀라 손을 데이게 되는 그런 불. 가시를 잔뜩 세운 고슴도치처럼 내 불꽃은 닿는 모든 것을 흡수했고 날이 갈수록 불길은 거세졌다.
평범한 것처럼 살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나는 너무 뜨거웠다. 스스로도 열기가 감당이 안 되어 다른 사람을 태우지 않기 위해 최대한 거리를 두어야 했다. 그 거리는 언제나 나를 지독히도 외롭게 만들었다. 마음은 언제나 고단했고 지쳐있었다.
불을 잠재우기 위한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어떤 불꽃도 녹일 수 없을 만큼 차디차고 단단하게 얼어버린 얼음이 되어야만 했다. 차가워지려는 노력은 꽤나 효과가 있었고, 마침내 힘겹게 쌓아 올린 단단한 얼음요새 속에 타오르던 불꽃을 간신히 감출 수 있었다.
얼음같이 차가운 나에게서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온기를 느꼈다. 얼음 사이로 느껴지는 뜨거운 불길의 온기에 이끌린 이들은 나를 따스한 사람이라고 불러주었다. 반대로 나는 자주 불안해졌다. 스스로가 얼마나 차가운지 또 얼마나 뜨겁고 위험한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얼어붙은 나를 녹이고 동시에 매서운 불꽃을 잠잠하게 해 줄 사람을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언제나 이렇게 타오르는 불꽃을 얼음 속에 가둔 채로 쩍쩍 갈라진 마음속을 들키지 않고 괜찮은 척 끝까지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랐을 뿐이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뜨거울 수가 있지? 난로인가?" 그가 나의 세상에 들어온 후로 나는 얼음이나 불꽃이 아니라 난로가 되었다. 그는 나의 얼음요새를 난로로 다시 조각해서 강렬하던 불꽃이 안전하게 타오를 곳을 만들어 주었다.
그가 조각해 놓은 얼음난로 속에서 마침내 나의 불꽃은 잠잠해졌다. 매섭게 뜨거웠던 불꽃은 딱 맞는 제 집을 찾았다. 쉴 곳을 찾은 불은 이제 고요하고 아름답게 일렁이며 주위를 따스한 온기로 데워주고 있다.
얼음과 불꽃을 모두 삼키고 사느라 시시때때로 얼어붙었다 타올랐다를 반복했던 삶이었다. 가끔은 꽁꽁 얼어붙어 그대로 부서져 버리기를 바랐고, 또 다른 날은 남겨진 것 하나도 없이 나 자신을 까맣게 불태워 버릴 수 있기를 바랐다.
이제야 내게 맞는 온도를 찾았다. 주변을 모조리 태울까 봐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 다행히도 앞으로는 너무 차갑지도 너무 뜨겁지도 않은 딱 적당한 온도로 남은 날들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누구도 얼리거나 태우지 않고 은근한 온기를 전해주는 사람으로 계속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