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명절에는 남편이 밤샘 작업을 하게 되어서 시댁에 아주 잠깐만 다녀왔다. 구정 설마다 하루 전이 아버님 생신이기도 해서, 생신축하와 더불어 함께 명절예배도 드리고 아들과 며느리, 딸까지 세 명이 쪼르륵 서서 새해맞이 세배도 드렸다.
세상 엉성한 세배를 마치고 아버님 어머님이 들려주시는 덕담을 들으려고 자리에 앉았더니, 어머님은 성경책에 넣어두었던 봉투 세 장을 꺼내어 아들 한 장, 며느리 한 장, 딸 한 장 이렇게 나누어주셨다. 그렇다. 나는 명절에 시어머니께 세뱃돈을 받는 며느리다.
주변의 친한 사람들에게 가끔 시댁 얘기를 하면 "너희 시댁은 정말 상위 1%다." 하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나도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시부모님은 두 분 다 인격과 성품이 참 좋으신 분들이다. 결혼하기 전 인사드린 순간부터 언제나 다정하셨다.
당시 남자친구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처음 뵈러 가는 날, 사건사고가 많아서 스타킹도 찢어지고 지하철은 연착되고 나는 정말로 초조해졌었다. 식은땀이 날 정도로 긴장해서 소화도 잘 안 되었는데 아버님은 내가 부담스러울까 봐 여자들끼리만 먼저 만나라고 배려해 주셨다.
또 내게 "우리 아들은 결정도 늦고 행동도 느린 편이라 유진이가 아니었으면 결혼하기 힘들었을 거야. 고맙다." 하셨다. 결혼식을 위한 한복을 맞추어 드릴 때도, "유진이 덕분에 예쁜 한복을 입게 되었네." 하셨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다음 주가 추석이었는데 추석음식은 어머님, 아들, 며느리, 딸이 모두 한몫씩을 담당하기도 했다. 친정에 가기 위해 출발할 때는 친정부모님께 선물을 준비했다며 몸에 좋은 고급 버섯 세트를 건네주기도 하셨다.
크리스마스 때마다 직접 갖고 싶은 걸 고르라고 하신 후에 선물도 사주셨고, 때로는 우리가 부모님께 드린 용돈보다도 더 많이 며느리에게 때마다 용돈을 건네주시기도 하셨다. 며느리를 위해 돈을 쓰셔서가 아니라 뭔가 하나라도 더 챙겨주시려는 마음이 감동적이었다.
사실 내가 진짜 감동을 받았던 건 결혼 후 몇 년 동안 심각하게 아팠을 때였다. 사무실 리모델링 후 새집증후군으로 온몸의 피부가 뒤집어져 고생하는 며느리를 위해 시부모님은 2주에 한 번씩 양평까지 가셔서 피부에 좋다는 약수를 떠다 주셨다.
약수도 한 가지가 아니라 먹는 약수 1.5리터 물병으로 4~5병을 구입하고, 그 외에 몸을 씻는 물도 주셨다. 나중에 알았지만 몸을 씻는 약수는 오랫동안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직접 받아와야 하는 거였다. 그런데도 매번 커다란 드럼통 같은 물병을 두 통이나 가득 채워 가져다주셨다.
게다가 아픈 내가 불편할까 봐 물병은 문 앞에 두고 영양제 등은 문고리에 조용히 걸어두셨고, 집 앞에 둔 약수를 챙겨가라고 아들에게만 문자를 보낸 뒤 벨도 누르지 않고 그냥 가시곤 했다. 시부모님은 며느리를 위해 멀리 양평까지 다니시면서 꼬박 2년 동안 격주로 한 번씩 약수를 길어다 주셨다.
쉽게 할 수 없는 일인 것을 알기에 어떻게든 그 감사를 되돌려드리려고 노력하는 며느리로 살려고 하고 있다. 부어주시는 사랑이 너무도 크기에 나 역시 그런 점을 배우게 된다. 좋은 풍경을 보거나, 예쁜 것들을 보거나, 맛있는 걸 먹으면 시부모님을 모시고 가고 싶어 진다.
결혼 전에 가장 두려워하고 걱정했던 지점이 바로 시댁과의 관계였다. 원가족이 아닌지라 서로를 위한 적응과 이해의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현실에는 일방적으로 상대가 노력하기만을 바라는 시댁들이나 혹은 아들들이나, 며느리들의 사례가 넘쳐난다.
나의 배우자 기도에는 언제나 시댁을 위한 기도가 5순위 안에 들었었다. 감사하게도 정말 좋은 시부모님과 시댁 식구들을 만났다. 가끔은 친정보다 시댁이 좋다고 해서 주변 친구들로부터 특이한 며느리라는 이야기를 듣지만, 서로 사랑을 표현하고 나눌 수 있는 관계로 지낼 수 있어서 참 감사하다.
어머니 설에 저희가 드린 용돈보다 세뱃돈 주시느라 더 많이 쓰시는 거 같아요. 항상 자녀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마음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님 언제나 먼 거리 마다하지 않으시고 태워다 주시고 예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받은 만큼 표현하는 며느리가 될게요.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아버님 어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