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분명 돌아올 시간이 한참 지난 것 같은데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내가 엄마를 마중 가면 더 빨리 엄마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고사리 손으로 신발을 신고 나보다 작은 동생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엄마가 어디에 갔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바로 우리가 다니던 교회였다. 아파트 5층을 한 계단씩 걸어 내려오면 아파트 단지 맞은편에 상가가 보였다. 상가 지하에는 엄마와 자주 가던 목욕탕이 있다. 그 상가를 따라 오른쪽으로 쭉 가면 사람들로 언제나 북적이는 시장이 하나 있었다.
시장의 초입에는 맛있는 떡볶이를 파는 집이 있다. 빨간 앞치마를 두른 떡볶이 집의 사장님은 나의 유치부 담임 선생님이시기도 했다. 시장 길을 쭉 따라가 끝까지 간 후 사루비아 꽃이 잔뜩 피어있는 화단이 가득한 주택 단지를 지나면 그곳에 우리가 다니던 교회가 있었다.
그날 우리는 호기롭게 엄마를 찾아 길을 나섰고, 주변을 둘러보며 씩씩하게 걸었다. 어른의 걸음으로는 멀지 않은 거리였겠지만 일곱 살짜리 어린아이의 걸음으로는 꽤나 멀고도 험한 길이었을 것이다. 다섯 살밖에 안 된 동생에게는 더욱 그랬다.
금방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한참을 헤매다 결국 엄마를 만나지 못하고 지쳐버려 어딘가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던 것에서 나의 기억은 멈추어 있었다. 나중에 엄마에게 후일담을 들을 수 있었다.
엄마가 우리를 찾아낸 곳은 주택단지 내의 사루비아 꽃이 잔뜩 피어있는 어느 화단 아래서였다고 했다. 교회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엄마는 아이들이 사라진 걸 깨달았다. 얼마나 깜짝 놀라셨을까?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셨을 거다. 엄마는 아이들을 찾아 나섰다.
일곱 살과 다섯 살짜리 조그만 여자아이 둘을 보셨는지 시장분들과 행인들에게 수소문 끝에 우리의 동선이 엄마를 찾아가던 것임을 알게 되셨다고 했다. 다행히도 늦기 전에 울다 지쳐 서로 꼭 끌어안고 잠든 두 아이를 사루비아 꽃 아래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그때의 감각이 남아있는 것인지 가끔 불안하거나 두려운 일을 앞두면 밤새도록 누군가를 찾아 헤매는 꿈을 꾼다. 가도 가도 길은 끝나지 않고 아무리 찾아도 기다리는 사람은 만나 지지 않는다. 그런 꿈을 꾸면 분명 꿈이란 걸 아는데도 엉엉 울면서 깨는 일도 있다.
생각해 보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는 채 꽤 오래 '불안'이라는 증상을 앓아온 것 같다. 형제들 사이의 서열, 부모님의 싸움, 친구들 간의 관계 등 수많은 원인들이 있겠지만 무엇이 원인이다 하고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국어사전에서는 불안을 '마음이 편하지 않고 조마조마한 상태'라고 정의한다. 불안의 반대말은 '편안'이다. 편안은 '편하고 걱정 없이 좋음'이라는 뜻이다. 이제는 이유 모를 '불안' 대신 걱정 없이 '편안'을 누리고 싶다.
엄마를 찾다 사루비아 꽃 아래에서 울다 지쳐 잠든 불안한 나를 기억하는 대신, 길을 잃은 나를 포기하지 않고 찾아낸 엄마의 사랑과 품에 꼭 안고 집에 데려가 편안하게 방에 눕혀서 재워 주셨었다는 걸 기억하고 새겨 두어야겠다.
그렇게 사랑받았던 감각들을 하나씩 되살리다 보면 내 삶에도 조마조마한 불안 대신 걱정 없는 편안이 삶을 채울 수 있으리라 믿어본다. 더불어 나의 편안을 뛰어넘어 날마다 신이 허락하시는 평안을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