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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하루를 위해 줄게 Free smile

by Pearl K

언제부턴가 연례행사처럼 1년에 한 번은 반드시 찾아가게 되는 곳이 있다. 그곳에 들어가면 일단 넓고 환한 조명들이 나를 반겨준다. 환한 조명 아래 쿠션감 좋은 푹신한 의자들이 놓여있고, 앉은 자세에 맞추어 의자의 위치도 편안하게 조정할 수 있다.


의자 양옆으로는 각종 도구들이 정갈하게 세팅되어 있고, 개인용 티슈와 미니휴지통까지 완비되어 있다. 그곳을 방문하기 전에는 기대감과 동시에 두려움이 생기지만, 일단 다녀오면 개운함과 더불어 일종의 안도감이 찾아온다. 사전에 예약이 되지 않으면 갈 수조차 없기에 방문 전에 미리 예약하고 준비해야 한다.


올해는 미리 방문예약을 해 두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가기 전부터 뭔가 느낌이 조금 달랐다. 평소와는 다른 감각에 걱정과 두려움을 안고 찾아갔더니 역시나 한 번으로는 깔끔하게 정리가 되지 않았다. 덕분에 짧은 기간 내에 세 번이나 다시 찾아가야만 했다.


이 장소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굉장한 공포를 심어주는 곳이다. 어릴 때부터 이곳에 자주 갔던 사람들에게는 특히나 그렇다. 반대로 나는 어릴 때 여기에 간 기억이 거의 없다. 이미 눈치챘을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정성 들여 설명한 이 장소는 바로 치과다.

내게는 치과에 대한 공포가 없다. 유전적 혜택으로 타고난 건치에 속하는 지라 치과를 가 본 경험이 거의 없고 치료를 받아본 경험도 없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치아관리를 잘하는 편도 아닌데 이제까지 충치가 생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건 진짜 부모님께 감사하는 것들 중 하나다.


딱 한 가지 치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이 있다. 다른 친구들이 유치에서 모두 영구치로 치아가 바뀔 무렵에도 태어나서 처음 생겼던 나의 유치 2개는 그대로 있었다. 그때 치과에 처음 가 보았는데 의사 선생님의 설명으로는 영구치의 싹이 없으니 열일곱 살이 되면 유치를 제거하고 대체치아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셨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열일곱 살을 한참 지나 그 두 배인 서른다섯 살이 될 때까지도 유치를 사용했고, 때로 웃거나 말할 때는 치아 사이로 바람이 빠지는 소리가 나서 몹시 민망했다. 덕분에 남들 앞에서는 최대한 고개를 숙이고 입을 계속 가리고 다니기도 했다.

서른다섯이던 그 해에 청소년부 선생님들과 스승의 날 식사로 고기를 먹다가 쇠젓가락을 잘못 씹어 유치가 깨지는 사고가 생겼다. 급하게 알아봤더니 예상보다 17년이나 더 사용한 자그마한 치아로 인해 충분한 공간이 나오지 않아 임플란트 시술은 불가능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작은 유치로 인해 전체 치아의 방향도 가운데로 쏠려 있어서 치아가 모두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 신속하고 빠른 결정이 필요했다. 여러 가지 방법을 찾다가 치과 선생님의 권유로 빠진 유치 2개에 양옆에 2개까지 함께 브릿지로 만들어 씌우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다.

깨져버린 유치를 제거하고 양옆의 치아를 비슷한 크기로 맞추어 갈아내는 것이 먼저였다. 임시치아를 끼우고 브릿지로 제작할 치아의 본을 뜬 후에 완성된 치아가 올 때까지 앞니 사용을 못하고 어금니로 연명하며 몇 달에 걸쳐 시술을 진행했다.


가진 비용이 충분하지 않았는데 친구가 흔쾌히 브리지 비용을 전액 빌려주었고, 나는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마음으로 그 호의를 받았다. 덕분에 치아 전체가 틀어지기 전에 무사히 깨끗하고 정갈한 앞니를 4개나 얻을 수 있었다.

한 가지 놀라웠던 건 완성된 치아를 보고 색이 너무 누렇게 보여서 안 맞을 것 같아 걱정했는데, 막상 시술을 하고 나니 그 치아가 제일 눈에 띌 정도로 하얀색이었다는 거다. 치아색을 맞추려면 커피를 더 자주 마셔야겠다는 농담반 진담반인 친구의 말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줄기차게 마셨던 기억이 난다.

바람이 줄줄 새던 앞니의 대문이 꽉 닫히고 나니 뭔가 안전해진 느낌이었다. 누군가 눈치채면 어쩌나 고개를 숙이고 감추기에 급급했던 얼굴도 마음껏 들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점점 전보다 입을 덜 가리게 되었고 더 많이 자주 소리 내어 환하게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를 바라볼 때도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더 자신감 있게 쳐다볼 수 있게 되었고, 다른 사람과 얼굴을 마주 보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떨쳐낼 수 있었다. 만들어진 정갈한 치아가 생기면서 유치를 내보이기 부끄러워 사라진 줄 알았던 자신감이 다시 생겼다.

전엔 웃을 때도 눈치를 보느라 경직된 얼굴이 될 때가 많았지만, 이제는 그런 걱정 없이 마음껏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이 눈물 나게 좋았다. 그때 깨달았다. 예전과 비교해 보았을 때 나 스스로가 얼마나 밝아지고 환해졌는지.


또 누군가의 멋진 하루를 바라며 아무런 조건 없이 환하게 웃어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를 배우게 되었다. 이 시술을 계기로 다양한 외모 가꾸기를 시작하여 평생의 동반자인 남편까지 만나게 되었으니 치과는 내게 참 여러 가지로 고마운 곳이다.


이번에 병원에 갔다가 타고난 건치인 나도 이제 치석관리를 소홀히 하면 문제가 생기는 나이가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매일 제대로 된 양치질도 꼼꼼히 하고 정기적인 치과 방문도 잊지 않아야겠다. 앞으로도 환한 미소를 보여줄 수 있기 위해서는 늦지 않게 후회 없이 관리할 것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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