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즐겨보는 프로그램 중에 고독한 훈련사라는 방송이 있다. 원래 방송시간은 목요일 저녁인 모양이지만 나는 주로 월요일에 재방송으로 보게 된다. 개통령이라 불리는 강형욱 훈련사가 나오지만 보고 있으면 스트레스가 쌓이는 다른 프로그램과는 달리 그야말로 힐링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는 다양한 지역과 환경에서 각자의 모습으로 보호자들과 함께 살고 있는 강아지들이 등장한다. 때로는 사소한 문제행동이 있기도 하고, 신기하리만큼 기특한 강아지들도 있다. 굳이 애써 사람이 정해둔 틀에 끼워 맞추도록 훈련해야 하는 내용이 아니라서 부담스럽지가 않다.
동물들은 동물들대로 사람들은 사람들대로 환경에 맞추어 서로에 맞게 편안히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무엇보다도 보기 좋다. 중요한 건 그들 하나하나의 생이 각각 그 모양 그대로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고독한 훈련사를 보고 있노라면 내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강아지들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어린 시절부터 학창 시절까지 자라는 내내 언제나 강아지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내게 강아지를 키우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다. 첫 시작은 초등학교 때 막내 이모의 옆집에서 분양받아온 스피츠 믹스견 해피였다.
스피츠의 특성상 크기가 꽤 컸는데 베란다에 목줄을 해 두어도 낯선 사람이 올 때마다 짖는 소리가 너무 컸다. 덕분에 해피가 있는 동안 우리 집에는 그 어떤 친구도 놀러 오지 못했다. 그렇게 열심히 짖는 해피였지만 삼 남매를 공격하거나 물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우리 집에서는 3년 정도 해피를 키웠는데 털이 너무 많이 날리고 짖는 소리가 커서 엄마가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고 포기선언을 하셨다. 눈물을 흘리며 싫다고 했지만 우리의 필사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해피를 다른 곳으로 입양 보내기로 했다.
결국 교회 코앞에 있던 사찰 집사님 댁으로 해피가 가게 되었다. 그 후로 주일마다 교회가 있는 골목 입구에 들어서면 어떻게 알았는지 해피는 쏜살같이 뛰어나와 꼬리를 세차게 흔들어 댔다. 그리고는 우리 삼 남매를 꼬박 3년 동안이나 온 힘을 다해 반겨주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해피가 갑자기 보이지 않아 안부를 물었더니, 해피는 번식기를 맞아 짝을 찾으러 야외를 산책하다가 달려오던 트럭에 부딪혔다고 했다. 신기하게 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지만 안타깝게도 뇌진탕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들었다.
두 번째로 키웠던 강아지는 흔치 않은 종인 빠삐용 믹스 야롱이였다. 전신이 까맣고 귀 모양은 삼각형처럼 뾰족하고 얼굴에 흰 무늬가 있으며 아주 총명하고 영리한 강아지였다. 엄마가 사골국을 끓일 때마다 작은 뼈 하나를 갉아먹으라고 줬는데 그게 아롱이의 몸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걸 미처 몰랐다.
6개월 정도 함께 살다가 아롱이의 건강이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다. 원인을 알아보니 조금씩 갉아먹은 뼛가루가 뭉쳐서 뇌로 들어가서 뇌전증을 일으켰다고 했다. 아롱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끔찍한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고통스러워하는 아롱이의 모습을 바로 눈앞에서 보면서 우리는 어찌할 줄을 몰랐다.
결국 부모님께서는 아롱이가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도록 안락사를 시키는 게 좋겠다고 결정했다. 자신이 아프니 가까이 오지 말라고 내내 으르렁대던 아롱이는 어느 순간 갑자기 우리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마치 작별을 준비하듯 한 명 한 명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잠시 후 확인해 보니 아롱이는 마치 잠든 것처럼 편안하게 더 이상 아프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은 곳으로 혼자 떠났다. 한밤중에 우리는 아롱이를 위해 작은 장례식을 치러주었다. 아롱이에게 미안하고 안타까워 한동안은 그 어떤 강아지도 키울 수 없을 것 같았다.
몇 년이 지나고 말티즈 다솜이가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3.5kg의 다솜이는 정말 순둥순둥한 성격이어서 이 사람에게 안기고 저 사람에게 안기고 사람의 손을 정말 많이 탔다. 다솜이는 내가 대학에 가기 전 해에 우리 집에 와서 몇 년간 지내면서 세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새끼강아지는 남아 2마리에 여아 1마리였는데 그 이름은 믿음, 소망, 사랑이었다. 눈도 뜨지 못하고 꼬물거리는 쪼끄만 강아지들을 손바닥 위에 가득 채워 올려놓고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믿음이 소망이 사랑이는 2개월 정도 엄마 품에서 튼튼하고 씩씩하게 자란 후 각각 다른 집으로 입양을 갔다.
우리 삼 남매가 대학에 가느라 다른 지역으로 가면서 부모님만 남아 계시는 상태에서 다솜이를 건사하기가 쉽지 않으셨나 보다. 결국 새끼들이 입양 가고 1년 있다가 다솜이도 다른 집으로 입양을 갔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 엄마를 원망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일이었다.
자취하던 중이어서 나중에 강아지를 키울만한 공간이 충분한 집이 생기고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꼭! 강아지를 다시 키우리라 다짐했었다. 자취를 시작하고 금세 강아지를 키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사실 강아지 키우는 걸 거의 포기하게 될 만큼 오랜 시간이 지났다.
친자매여도 동생과 단둘이 함께 산 지도 8년이 넘어가니 서로 생활스타일이 달라 부딪치는 일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급기야는 각자 방에 들어가 나오지도 않고 말도 잘 안 섞기에 이르렀다. 나는 너무 외로웠고 누군가를 돌봐주고 사랑을 주고받을 대상이 필요했다.
그때 다시 강아지를 데려와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해 보았지만 펫숍에서 분양받는 것은 싫었고 유기견을 돌보는 것도 자신이 없었다. 인터넷을 뒤지다가 강아지 동호회 카페에서 가정견을 분양한다는 글을 보았고, 그때 사진으로 처음 보게 된 강아지가 봉봉이었다.
아기였던 봉봉이는 상상도 못 한 사고를 엄청 많이 치는 편이었다. 그래도 봉봉이가 있어 동생과의 대화도 회복되었고, 지금의 남편도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삶을 돌아보니 강아지가 함께 했던 순간들이 그렇지 않은 순간보다 훨씬 많았다.
고독한 훈련사 최근 회차에서 때로는 속상한 날도 힘들고 어려운 날도 있지만 기쁨과 다정한 위로가 되어주는 내 강아지들 덕분에 반려견 보호자로서 더욱 성장할 수 있었다던 배우 이승연 씨의 고백처럼, 나도 더 나은 보호자가 되기 위해 성장하는 중임을 잊지 않아야겠다.
p.s: 대략 13년 전 만났던 페키니즈 다발이를 다시 사진으로나마 볼 수 있어서 너무 반가웠다. 무지개다리 건너에서 잘 지내고 있기를.
p.s2: 첨부한 사진은 우리집 봉봉이의 벚꾳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