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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May 26. 2023

엄마의 정원

우리 엄마는 식집사다. 아니 식물박사다. 시들시들하게 죽어가는 화분들도 엄마 손에만 가면 파릇파릇 제 빛깔을 내며 살아난다.


   그런 엄마가 아파트 앞 모두가 함께 이용하는 공용화단에 조금씩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더니, 몇 년 지나지 않아 이렇게나 화사하고 예쁜 꽃밭이 생겼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감탄하느라 바쁘다.


   엄마는 주민대표를 세 번 정도 연임했던 경력이 있다. 하루는 관리소장님이 엄마를 찾아와서 부탁했다. "대표님 꽃밭이 너무 예쁘긴 한데, 이렇게 하시면 저희가 곤란해요. 다른 데서 우리는 왜 안 해주냐고 항의가 들어오거든요. 그러니 적당히 해주세요."


   그 후로도 엄마는 꾸준히 아파트 앞 공용화단에 식물을 가꾸셨다. 처음엔 가지치기도 되지 않고 덤불로 우거져 뱀이 나올 것만 같았던 화단에 이제는 철 따라 계절 따라 갖가지 꽃들이 자신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피고 진다.


   식물은 잘 돌보면서 내 마음은 돌봐주지 않는 엄마가 서운해서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었다. "식물의 마음은 잘 알면서 왜 내 마음은 몰라?" 엄마는 한 마디로 나의 투정을 일축했다.

   

  "식물은 키우는 대로 잘 자라지만 너는 도대체가 엄마 말을 통 안 들어먹잖아." 엄마의 에 잔뜩 볼멘 채 삐쭉 나온 입을 했지만 더 이상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물었다. "그럼 엄마는 식물을 왜 그렇게 좋아해?"

   

   대답을 한참 고민할 줄 알았는데 엄마는 마치 준비한 것처럼 식물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술술 말했다. "그거야 식물은 씨를 뿌리고 물을 주면 자라나고, 신경 쓰고 가꾼 만큼 예쁜 꽃을 보여주니까 수고한 만큼 보람이 크잖아. 엄마는 그래서 식물이 참 좋다."


   이렇게 식물을 사랑하고 잘 가꾸는 엄마의 딸인 나는 사실 연쇄살식마에 가까운 식물 문외한이다. 또 정원을 가꾸는 방법은 모르지만 아름다운 자연과 예쁜 꽃을 보는 것은 언제나 대환영이다.


  비록 나의 정원을 꾸밀 수 있는 실력은 없지만. 식물을 사랑하는 엄마를 두어서 다행이다. 내가 참 좋아하는 수국이 다 지기 전에 직접 가꾸지 않아도 아름답게 감상할 수 있는 엄마의 정원으로 꼭 한번 놀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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