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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구명튜브

by Pearl K

언제부턴가 아무리 숨을 크게 들이마셔도 가슴속이 쉽사리 개운해지지 않았다. 태어나면서부터 알레르기 질환이란 질환은 다 가지고 태어났지만 단 한 가지 천식만은 그 목록에 없었다. 덕분에 나는 어린 시절 보았던 만화 ‘달려라 하니’ 속의 하니 라도 된 듯 숨이 찰 걱정 없이 마음껏 달릴 수 있었다. 지구력이 부족해서 장거리는 무리였지만 단거리인 100m 달리기에 있어서만큼은 17초 대로 가뿐하게 주파할 수 있었다.


유난히 미세먼지가 심각했던 2014년 가을, 공기 중에 떠도는 미세먼지를 들이마신 후 발작적으로 시작된 기침은 3개월이나 이어졌다. 처음에는 가볍게 지나갈 줄 알았는데 상태는 점점 심각해졌고, 일반적인 이비인후과에서는 해결이 안 될 지경에 이르렀다. 약을 쓰고 있으니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급기야는 기침하다 피를 토하고 나서야 덜컥 심장이 내려앉을 정도로 무서워졌다.


3차 병원의 호흡기 내과를 예약하고 진료를 받았다. 산소포화도 검사와 폐의 용적률 검사 그 외의 여러 검사가 이루어졌고 그곳에서 공식적으로 천식을 진단받았다. 100%의 산소를 들이마신다고 해도 내 폐가 처리할 수 있는 산소포화도는 단지 97%뿐이라고 했다. 겨우 3%라니 큰 차이가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 3%는 삶이 생각보다 꽤나 불편해진다는 것을 예고하는 수치였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흡입기 심비 코트를 들고 2개월 치의 약을 처방받고 병원문을 나섰다. 호흡기 내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은 지 일주일 만에 기침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호흡이 불편했던 문제도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졌고 가슴이 답답하던 증상들도 사라졌다. 원래부터 천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미세먼지 때문에 일시적으로 발현된 거니 나는 조심스럽게 완치를 낙관하기 시작했다.


다시 봄이 오고 꽃가루와 황사가 날리면서 그때부터 가끔 호흡이 잘 안 되고 숨쉬기가 어려웠다. 이미 천식 증상이 있었기 때문에 병원 진료를 받으러 갔더니, 병원에서는 동그란 원형 튜브처럼 생긴 세레타이드라는 치료용 흡입기를 처방해 주었다.


세레타이드는 처음에 받았던 흡입기와는 조금 달랐다. 숨이 잘 안 쉬어지는 순간마다 세레타이드를 사용하면 즉시 숨쉬기가 편해졌다. 무엇보다 이 약제는 꾸준히 써주어야 더 효과가 있다고 해서 정기적으로 병원에서 처방을 받아두고 자기 전에 한 번씩 사용하곤 했다.


몇 년 전 직장에서 겪은 힘든 일들로 맘고생이 너무 심해지면서 가벼운 공황장애가 왔었다. 그때 몸으로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이 과호흡 증상이었다. 숨을 쉴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을 해결하는 데도 이 약제는 너무 큰 도움이 되어주었다. 2020년 가을 미세먼지의 2차 습격으로 다 나은 줄 알았던 천식이 재발했을 때도 그랬었다.

문득 세레타이드가 나에게는 구명튜브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작스러운 호흡곤란이 왔을 때 이 흡입기 덕분에 긴급 해질뻔한 상황을 여러 번 넘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본래 구명튜브의 역할은 물에 빠진 사람이 물 위에 떠 있게 해주는 것이다. 체온도 보존하며 요구조자가 지쳐도 물에 잠기지 않아 구조자가 갈 때까지 시간을 벌어준다.

천식에 사용하는 흡입기의 역할도 같다. 좁아진 기관지를 일시적으로 확장하도록 해주어 호흡하기에 충분한 공기가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의료진이 제대로 된 조치를 하기 전까지 호흡을 보존하며 심장을 뛰게 해서 시간을 벌어준다.

나의 인생에도 이런 구명튜브가 있는지 생각해 본다. 감정이 깊고 어두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던져줄 구명튜브, 마음의 숨이 차올라 좁아지는 순간에 확장시켜 주는 흡입기 같은 그 무엇. 그런 것이 내 삶에 있다면 과연 무엇일까. 이 문단을 쓰면서 이미 정답을 알겠다.

내 인생의 구명튜브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글쓰기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재미있고 즐겁기만 했으나 요즘은 전전두엽을 관통하는 통증이 사라지지 않을 만큼 꽤 힘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글쓰기는 내 인생을 다시 숨 쉬게 하고 환기시켜 주는 구명튜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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