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7일 낮 12시경, 내가 이전에 알던 세상은 완전히 새로운 곳이 되었다. 달라진 것은 단 하나뿐인데 이 작은 생명체는 세상 밖으로 나오자마자 온통 내 시선을 빼앗아 갔다. 그 놀라운 아이는 3.4kg으로 건강하게 태어난 나의 첫 번째 친조카 열매다.
그날은 아침부터 매우 분주했다. 올케의 건강과 태아의 건강한 출산을 위해 미리 큰 종합병원에서 제왕절개 시술을 하기로 날짜를 잡아놓은 터였다. 임신 39주 차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예정일에 맞추어 태어났다면 나와 생일이 아주 가까웠을 조카여서 처음 임신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마음이 더 많이 가긴 했다는 걸 인정한다.
오전 여덟 시 시술을 위해 병원에 하루 일찍 입원했던 올케와 오빠는 입실 콜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갑작스럽게 찾아온 응급 분만환자로 인해 시술이 미루어졌고, 일단 대기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소식은 실시간으로 가족톡을 통해 전달되었다.
2월 등교일이라 정신이 없었기에 틈틈이 톡을 확인하면서도 학년말 최종 업무를 처리해야 해서 바빴다. 급한 일들을 정리하고 보니 궁금한 듯 질문을 쏟아낸 엄마에게 오빠는 꽤 시간이 걸릴 것 같다며 언제 들어갈지 모르니 느긋하게 기다려 보라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1분이 하루 같은 긴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고 오전 11시 32분경, "지금 들어가" 하는 오빠의 짧은 톡을 끝으로 한동안 가족톡방은 조용했다. 부모님은 저 멀리 고향에서, 나와 여동생은 직장에서 각자가 짧게나마 올케와 조카가 모두 건강하기를, 아기가 무사히 태어나기를 기도했다.
오후 12시 20분, "태어났어 " 하는 말과 함께 오빠가 첫 번째 조카의 사진을 보내주었다. 아기사진을 정말 많이 보아왔기에 전혀 예상조차 못했는데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열매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심지어 막 태어난 갓난아기라서 피부가 쭈글쭈글하고 머리는 젖어있고 눈도 잘 못 뜨고 울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손과 발은 자유롭게 펼쳐져 있고 발에는 무언가 띠로 표시가 되어 있었다. 배에는 방금 전까지 엄마와 연결되어 있었을 탯줄이 끊어진 채로 달려 있었는데 그 모습마저도 사랑스러웠다. 첫 번째 기저귀도 채워져 있는데 왠지 헐렁헐렁했다. 가슴 위에는 심장박동 체크를 위한 하트 모양의 심전도 검사용 전극 두 개가 붙어 있었다.
달랑 네 장의 사진을 하루종일 보고 또 보면서 자꾸만 미소가 지어졌다. 첫 딸이어서인지 갓 태어난 얼굴은 놀라울 정도로 친오빠와 똑같이 생겨서 조금 웃기기도 했다. 아기들은 자라면서 계속 얼굴이 변한다고 하는데 이 아이의 얼굴이 시시각각으로 변해갈 모든 순간들이 보고 싶어졌다.
조카를 예뻐하는 이모나 고모나 삼촌들을 보면서 저렇게까지 이쁜가 하고 가끔은 이해가 안 가는 지점이 있었는데, 내가 얼마나 무지했었는지를 또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저 태어나기만 했는데 이렇게 사랑스러울 일인가.
친조카가 이 정도로 예쁘다면 부모들이 말하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것이 어떤 감정일지 아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매일매일 새로운 사진을 보고 싶은데, 친오빠가 아이의 사진을 자주 올려주지 않아 궁금하고 아쉽기만 하다. 물어보면 화를 내거나 귀찮아할 가능성이 높아 차마 물어볼 수는 없었다.
어제는 무려 9일 만에 열매를 찍은 새로운 사진 7장이 가족톡에 올라왔었다. 아마 올케가 엄마에게 따로 보내준 것 같다. 대부분 누워서 자고 있는 사진이지만 자면서 좋은 꿈을 꾸는 건지 배가 불렀던 건지 세상 행복한 눈웃음을 짓고 있어 보는 나까지 행복해진다. 역시나 너무 사랑스럽다.
직접 만나기도 전에 사진만으로 이미 조카바보가 되어버린 큰 고모다. 내가 고모라니 낯설기만 하다. 사랑스러운 조카 열매야. 건강하게 엄마 아빠랑 지내고 있어. 백일이 지나면 만나러 갈게. 고모가 낯설더라도 울지 않아주기를.♡
피를 나누었다는 작은 연결고리 하나로 처음 보는 아기가 이렇게까지 사랑스러울 수 있는 건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란초 님의 글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태초에 누군가에게 연결된 존재였기에 결국 일생을 다해 그 온전했던 연결을 다시 찾아내고 싶어 헤매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결국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용서받아 하나로 연결된 존재다. 꼭 혈연으로 만나지 않더라도 가족으로 인연을 맺게 되는 이들도 하나하나 소중한데, 하물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 한 명 한 명을 얼마나 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로 바라보실까? 첫 번째 친조카를 마주하고 보니 이제 그 마음을 아주아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비로소 내게 주어진 사명의 무게감을 다시 배운다. 태초의 연결이 끊어져 버렸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다시 하나님과의 연결점을 찾아낼 수 있도록 그 연결고리를 잇는 통로로서의 역할을 잘 해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먼저 하나님께 든든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그 사실을 잊지 말고 되새기며 살아가야겠다.
마지막으로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곧 만나게 될 한 사람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멀지 않은 미래의 내 아이야, 미리 살짝 경험해 보니까 전혀 겁먹을 필요가 없었다는 걸 알았어. 네가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이 너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 이제 걱정하지 말고 엄마한테 와도 돼. 기다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