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earl K Feb 08. 2023

뜻밖의 인사

“저.. 혹시 제가 고등학교 때 읽은 책의 목록을 좀 받을 수 있을까요?” 한 여학생이 다가와 물었다. “고3이니?” 하고 내가 되물었다. 아이의 이름을 묻고 도서관 시스템에 찾아보니 1학년 때는 코로나로 인해 등교하지 못했고, 3학년 때는 취업을 위한 위탁교육을 받느라 두 달에 한 번씩만 등교해서 도서관을 이용한 건 2학년 때로 집중되어 있었다.


   2학년 때 대출했던 40여 권 남짓한 책의 목록을 받아 들고 다민이는 내게 이렇게 인사했다. “저에게 고등학교 때의 추억을 선물로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말이다. 졸업을 앞두고 당연히 한 번은 올 거라고 생각한 아이가 아니라 기대하지 않았던 의외의 아이들이 찾아와 인사를 건네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미안한 마음에 다민이에 관한 무엇이라도 알아두고 싶었다. 뻔한 질문을 던지며 진로를 어떻게 결정했냐고 묻는 내게 위탁교육에서 배운 것을 이어서 제과제빵 쪽으로 실제 일을 배우는 중이라고 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겠다고 했더니 출근이 7시라며 다민이는 배시시 웃었다. 어느새 다 자라 자신의 일을 찾은 아이가 기특해 보였다.


   다민이는 지난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코로나로 학교생활이 힘들었는데 2학년 때부터 도서관이 따뜻하고 아늑해서 참 좋았고, 사서 선생님도 따뜻해서 이 공간이 좋았다고 했다. 덕분에 고등학교를 잘 다닐 수 있었다면서 먼저 나를 향해 포옹했고, 나도 질세라 다민이를 꼭 안아주었다.


   “다행이다 너에게 따뜻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어서.” 나는 아이를 토닥여줬다. “선생님의 앞으로의 모든 꿈도 다 이루어지시기를 빌겠습니다,”하고 다민이는 씩씩하게 나를 응원해 주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네가 가진 모든 꿈도 다 이루어지길 진심으로 바랄게.” 나도 받은 마음을 더해 다민이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응원했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난 후 마스크를 핑계로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을 온전히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내심 미안했었다. 각자의 이름을 챙겨서 불러주거나, 얼굴을 기억해서 알아봐 주거나 먼저 선뜻 다가서지 못한 것들이 많아 아쉬웠다. 하지만 사소하게 건넨 말 한마디와 작은 도움의 몸짓 하나에서도 여전히 온기를 느껴준 아이들이 있어 고맙다.


   처음 입학할 때부터 마스크를 쓰고 시작해서 고등학교 생활 내내 생전 처음 겪는 초유의 입학식 보류와 온라인 입학, 원격 수업, 온라인 개학 등 수많은 변화를 겪었던 학년이다. 소풍, 수학여행, 체육대회, 축제는 꿈도 못 꾸었던 코로나 세대가 드디어 졸업식을 앞두고 있다. 이번 졸업식에는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함께 강당에 모일 수 있어 다행이다.


   고3 아이들아, 그동안 고생 많았어. 생각지도 못했던 다정한 인사를 건네주어 조금 울컥했지 뭐야. 그저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는데 일부러 찾아와서 인사해 줘서 고마웠어. 졸업하고 나서도 너희의 삶이 소소하고 멋진 행복으로 가득하기를 응원할게. 얘들아, 너희들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개학의 풍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