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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Feb 10. 2023

낮달에서 배운 것

며칠 전에 집으로 오다가 아직 해가 저물지 않은 하늘에 달이 떠 있는 것을 보았다. 해와 달이 같은 시간에 비슷한 톤의 밝기로 보이는 것은 신기하면서도 낯선 일이었다. 너무 이른 시간에 해와 함께 떠 있는 낮달을 보면서 왠지 나의 일을 떠올리게 되었다.

   

   해는 아침에 동쪽에서 뜨고 서쪽에서 진다. 달은 밤에 서쪽에서 뜨고 동쪽에서 진다. 두 천체는 단 한 번도 그 규칙을 어기지 않고 제 역할을 지킨다. 해와 달이 약간만 규칙을 어겨도 낮이 오지 않는다거나 밤에 빛이 하나도 없는 등 굉장히 큰일이 벌어질 것이다.


   어떤 일들은 너무도 당연하게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서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의 수고를 깨닫기가 어려운 것들이 있다. 당연해 보이던 일들이 사실은 어려운 일이었음을 알게 되는 건 어떤 일이 잘 될 때가 아니라 오히려 순조롭지 않을 때다.


   오늘이 그랬다. 아침부터 부장님이 메시지로 파일을 하나 보내고는 우리 실정에 맞게 수정해서 보내라고 했다. 확인해 보니 관리자가 바로 전에 근무하셨던 학교의 도서관 운영규정을 참고해서 쓰라고 보낸 것이었다. 솔직히 빈정 상하고 기분이 나빴다.

   

   우리 도서관에도 당연히 자관에 적합한 운영규정이 있다. 처음 개관한 해에 작성되어 연차를 거듭할수록 개정되었던 규정이기도 하다. 도서관의 운영에 있어서는 기본 중에 가장 기본인 것인데 사전에 최소한의 확인절차도 없이 다른 기관 걸 던져주고 수정해서 올리라니 몰이해의 끝판왕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도서관은 그곳에 있으며 알아서 잘 돌아갈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본인들이 필요할 때만 원하는 방식으로 기능하기를 바랄 뿐 정작 그 중요성을 잘 깨닫지 못한다. 심지어 운영하는 사서가 그곳에 있는지 없는지조차 잘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반대로 급한 일로 잠시 자리를 비우거나, 아주 작은 것이라도 어긋나면 금세 부재를 느끼거나 서비스가 부족하다고 강하게 요구한다. 결국 사서의 일이라는 것은 결국 모든 사람이 도서관을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하고, 그들이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다.

   

   도서관 이용이 편안하다면 사실 그 뒤에는 사서들의 보이지 않는 엄청난 노력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정말 모른다 도서관의 업무들이 얼마나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 하는지, 얼마나 전문적인 지식들이 필요한지, 사실은 얼마나 많은 부분을 조율해야 하는지.

   

    속상한 건 평소에 도서관과 사서의 일에 대해서 생각보다 너무 쉽게 말하고 지나치게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다. 심지어 땡보직이라는 말을 만들어 폄훼하고 깎아내렸다. 그렇게 내뱉은 말들이 대한민국 도서관의 발전을 족히 30년은 후퇴시켰다는 것을 알까?


   학부 때부터 대학원을 거쳐 직장생활까지 2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문성을 가진 일을 하면서도 매번 평가절하되고 폄하되는 속상함을 겪다 보니 때로는 자존심이 상한다. 더 나아가 같은 전공을 택하겠다는 제자들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매번 뜯어말리게 된다.

   

   전문성에 비해 너무도 열악한 최저임금을 겨우 상회하는 처우와 정권에 따라 예산이 깎이면 가장 먼저 0에 수렴되는 티오, 공공도서관에 전문사서의 수보다 행정직 공무원이 많아지는 등 희망을 갖기 힘든 미래, 지금도 여타 선진국에 비해 인구대비 공공도서관 숫자가 턱없이 부족한데 늘려도 모자랄 판에 동네 작은 도서관을 모두 없애겠다는 서울시장의 발표까지.

   

   제발 모르면 좀 물어보자. 자격을 갖춘 전문가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가끔은 그런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교육을 받고 슨 생각을 하며 어떤 책을 읽고 자란 걸까 싶어 진다. 충분한 지식도 없이 다른 사람의 일이나 직업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고 함부로 말하지 말자.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예의는 좀 갖추자. 본인들이 하는 일이 힘든 것처럼 타인의 직업에도 각자의 어려움과 힘듦이 다 있다. 잘 알지 못할 때는 그저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고 존중해 주면 충분하다. 그게 그렇게도 어려운 건가? 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다른 사람의 일을 쉽게 보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사회의 적재적소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너이고 나이고 누군가의 가족이고 또 친구일 것이다. 모두의 일상이 평범하고 편안하게 흘러가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많은 분들께 작은 말 한마디의 감사를 건네 보자.


   평소보다 조금 일찍 떠오른 낮달을 보고 잠시나마 반가웠던 것처럼 우리가 잊기 쉬운 일상 속 작은 감사의 마음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주 조금 더 살만해질지도 모르겠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다가오는 주말은 각자의 상황과 형편을 떠나 어디에 있는 누구든 지친 몸과 마음이 편히 쉴 수 있는 날이 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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