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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Feb 13. 2023

멈춰야 했던 이유

어느 날, 습관처럼 브런치를 열었는데 확 끌리는 제목의 글이 있었다. 그 글의 제목은 “지금 퇴사하는 중입니다.”였다. 퇴사하는 중인데 글을 쓴다고? 왜? 작가는 친절하게도 자기처럼 퇴사를 준비하는 혹은 퇴사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해서 퇴사를 결심한 순간부터 퇴사를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단계와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하나하나 기록하고 있었다.


   어떤 직장이 다니고 싶은 직장이냐고 물으면 내게는 먼저, 자신이 가진 능력을 충분히 펼칠 수 있고, 두 번째로 거기에 맞는 급여와 복지를 받을 수 있는 곳. 또 계속 커리어를 쌓아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있고, 삶에서 추구하는 가치와 맞는 곳이어야 한다. 여기에 출퇴근 시간이나 근무지 등의 적당한 워라밸까지 보장된다면 물론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완벽히 충족된다면 굳이 이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것이 맞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고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내가 원하는 것들이 충족되는 직장을 찾아 이직하는 것이 오히려 현명하고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모두가 이직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또 각자의 이유가 다르고 결정적인 원인이 발생하기도 한다.

   

   어느새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20년째가 되면서 나에게도 역시 그런 고민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일을 하면서 점점 권한이 축소되기 시작했고, 그것을 계기로 정말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던 것 같다. 결정적으로 나의 생각을 뒤집어 놓은 것은 지난 몇 년간의 경험 때문이었다.


   2016년 근무하던 곳의 리모델링을 계기로 3년간의 산재를 겪으며 그야말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환경호르몬 때문에 뒤집어지는 증상들을 약으로 모두 눌러놓고 그곳을 탈출했더니 겨우 도착한 곳에선 상상할 수 없었던 인재가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들끼리 치고받는 온갖 분쟁들 속에서 애매한 새우였던 나는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해서 터졌던 등이 또 터졌고,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싶은 수준의 건강 악화를 겪는 동시에 자행되었던 존재 자체에 대한 끊임없는 타인들의 가스라이팅은 심각한 무기력과 번 아웃을 선물해 주었다.


   지옥이 있다면 바로 이곳일 거라 믿으며 인간에 대한 모든 믿음과 삶이 모조리 무너져 버리는 경험을 했다. 매일 잠들기가 두려웠고 아침에 일어나기가 싫었다. 그저 내가 바스러져 우주먼지처럼 사라져 버리기만을 바랬다. 8개월간 자비로 전문 상담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버텼다. 폐와 심장에 문제가 없는데도 자꾸 숨이 안 쉬어져 고통스러웠고 결국 흡입기와 산소호흡기의 도움을 받아야 정상적인 호흡이 가능한 지경에 이르러서야 그게 우울증과 공황장애 증상이라는 걸 알았다.


   20여 년간 일하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휴직을 결정했고, 휴직 전부터 스스로를 돌보기 위한 꾸준한 만 보 걷기를 시작했다. 그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코로나가 시작되었고 심각하게 망가진 양쪽 눈과 여기저기 고장 난 몸을 되돌리는 세 번의 수술을 마쳤다. 그렇게 8개월이 넘게 그 지옥에서 분리되고 나서야 비로소 나다움을 조금은 되찾을 수 있었다.


   그때는 내가 믿는 신을 너무도 많이 원망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채 부표 하나 없이 혼자서 망망대해를 끝없이 표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왜 나를 이렇게 힘든 상황 속에 밀어 넣으셨는지, 이토록 견디기 힘든 곳으로 보내셨는지, 나를 가장 잘 아시면서 나한테 왜 그러시는지 따져가며 물었다. 하루는 울었다가 하루는 웃었다가 어린아이가 떼를 쓰듯 신께 매달렸다. 그분은 여전히 침묵하셨다.

   

   1년의 휴직이 끝나고 다시 돌아온 학교에는 괴롭게 하시던 이상한 분들이 거의 다 떠나셔서 그나마 분위기가 나아졌다. 감사하게도 쉬는 동안 쓰뱉에서 배운 글쓰기로 삶을 되돌아보면서 나는 비로소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었다. 먼저는 지난 20년간 아이들과 함께했던 삶을 돌아보았다. 또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최근 몇 년간에 벌어진 일들의 전후 사실관계와 내 피해상황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계기도 생겼다.


   처음엔 그저 쏟아 내는 데만 급급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것이 내 삶에서 가지는 의미를 곱씹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런 후에 한 가지의 결론을 내릴 수가 있었다. 내게 주어졌던 이 터널 같았던 시간은 그저 고통스럽기만 한 시간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 시간은 그동안 가진 것들을 다 소진해 버린 줄도 모르고 앞으로 앞으로만 달려가던 내게 그분께서 허락하신 온전한 쉼의 시간이었다.

   

   J 성향이라 어느 정도 통제 가능한 삶을 기대하는 내게 네가 책임질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고 네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내 힘대로 하려는 시도를 철저히 포기하게 만드셨던 시간이었다. 어쩌면 그게 가장 고통스러웠는지도 모른다. 사실 그동안에도 내 뜻대로 되어 왔던 삶 같은 건 하나도 없었는데도 말이다. 왜 이렇게까지 나를 힘들게 하시는지 모르겠다고 투덜대는 내게 친한 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샘을 아는데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으면 샘이 진짜로 쉴 수 있었겠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너무 식상한 표현이지만 정말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일에서도 건강에서도 처절하게 나를 무너뜨리지 않으셨다면 아마 아이들 보기 미안해서, 책임진 일이 있어서 나는 꾸역꾸역 끝까지 쉬려고 하지 않고 모든 것들을 붙들고 놓지 않았을 거다.


   사실 이 기간은 그분께서 내게 꽃을 피우시기 위해 다시 영양분을 차곡차곡 쌓아 채워주시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제대로 보충이 되어야 적절한 시기에 꽃 피울 수 있기에, 일희일비하며 매일 흔들리는 나 대신에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품고 내 곁에 묵묵히 계셔주셨던 거다. 너무 힘든 시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 감사한 쉼의 시간이었다. 참 오래 기다렸는데 새봄이 시작하기 전 겨울의 끝자락에 마침내 이 고백을 할 수 있어 기쁘다.


   겨울의 끝자락인 2월 나는 퇴사를 앞두고 있다. 출근일로만 따지면 이제 정확히 4일 남았다. 준비할 서류 때문에 연차도 탈탈 털어 사용하고, 다음 직장 일정도 있다 보니 진짜 며칠 안 남았다. 꼼꼼하게 인수인계서를 작성하고 짐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분주하게 해야 할 일들이 아직 많다. 3월부터는 새로운 곳에서 새 마음으로 다시 힘내서 일해보려고 한다.

   

   언제나 예상치 못하는 순간에 서프라이즈를 준비하시는 분이시기에 새로운 길을 열어주시면 나는 그저 아이처럼 신이 난다. 모든 것이 좋기만 할 순 없을 거다. 한 치 앞도 모르고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도 없지만 필요한 순간마다 한 번 더 나에게 질풍 같은 용기를 변함없는 사랑을 부어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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