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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Mar 03. 2023

특별한 지위나 자격은 없지만

친절은 여유에서 나온다. 내가 행복하고 여유롭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몸과 마음의 여유를 찾는 것은 그래서 더욱 중요한 일이다. 머리로는 너무 잘 알고 있는 이 사실을 실제로 실천하는 것은 참 어렵다.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새로운 일을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즐거워하는 사람이었다. 최근 여러 차례의 어려운 시기를 지나왔고, 코로나로 인해 몇 년간 강제로 내향형의 삶을 살다 보니 나의 본모습이 어땠었는지조차 잃어버린 것 같다.

   

   긴장할 필요 없다고, 여유를 가져도 된다고 마음속으로 백번쯤 외쳐도 잘 되지 않을 때가 많다. 특히나 누군가와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하는 일이 생기면 걱정하느라 잠을 못 자는 일이 잦아졌다. 혹은 겨우 잠들어서도 악몽을 꾸고,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나기도 한다.

   

   무언가를 실제로 실행하기 전에 걱정이 지나치게 많아진 것도 최근의 일이다. 맡은 일을 하고 학생들을 대하는 것은 별로 두렵지 않은데 새로운 직장동료들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 상황이 가장 어려운 일처럼 느껴지는 것은 몇 년간의 힘겨웠던 경험이 가져다준 트라우마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얻은 일주일 간의 쉼을 충분히 누리고 싶었는데, 그것마저도 병원일정과 편안한 지인들과의 만남들로 금세 흘러가 버렸다. 바짝 긴장한 탓에 아물었던 위염이 다시 도져버리기는 했지만 용기를 내어 한 걸음을 내디뎌 보기로 결심했다.    

   

   새로운 학교에 처음으로 간 날은 평일 기준으로 새 학기를 3일 앞둔 금요일이었다. 미션스쿨이라서 모든 순서는 짧은 예배로 시작되었다. 1일 차의 신임교사워크숍을 시작으로 업무인수인계를 받았다. 2일 차부터는 부서협의회, 교과협의회, 전체 교사 대상의 각종 부서별 연수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서로 인사를 나눌 새도 없이 이어지는 분주한 일정이었지만, 새로 만난 동료샘들은 그동안의 걱정이 무색하게 대부분 모두 친절하셨다. 덕분에 나도 바짝 얼었던 마음이 편안해졌다. 3일간의 워크숍도 잘 마쳤고 가뿐한 마음으로 업무를 준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입학식 전날, 자기 전에 펴든 햇살콩 묵상집에서 읽은 글이 마음에 와닿았다. "주님은 특별한 지위나 자격이 있는 사람을 부르지 않으시고 부르신 사람에게 감당할 힘과 자격을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반응하십시오."


   묵상글 아래에는 에베소서 말씀 한 구절이 적혀있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에베소서 2:8~9)"


   적지 않은 나이에 어느 정도 안정되어 보이는 자리를 포기한 나는 누군가에게는 어리석게 보일지도 모른다. 불안 대신 용기를 쥐어 짜내어 부르심에 믿음으로 반응하며 낯설고 두려운 첫걸음을 뗀다. 내게 특별한 지위나 자격은 없지만 이 모든 것을 충분히 감당할 힘과 자격을 주시기를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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