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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하지 말라

by Pearl K

<비판하지 말라>

남들에게는 미처 말하지 못하지만 내게도 나름대로 사람들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어떤 기준 같은 것이 있었다. 전적으로 나의 입장에 따라 정해진 기준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주관적인 기준을 일종의 정의감 같은 것으로 포장하며 스스로 꽤 올바른 척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


간단히 예를 들자면 누군가 횡단보도 빨간불에 무단횡단을 하면 '교통신호를 지키는 건 사회의 합의에 의해 정해진 규칙이잖아.' 같은 생각을 하며 그들을 판단하곤 했다.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에게 "빨간 불이에요."라고 얘기하기도 하는데, 그 말을 하는 동안 정작 들어야 할 사람은 이미 저만치 길을 건너가 버린 적이 많았다.

또 지하철 역사 10m 이내라던지 금연공원에서 담배를 피우는 아저씨들을 보며 "왜 저 사람들은 규칙을 지키지 않는 건가?" 하는 답답한 마음에 은근슬쩍 항의를 하기도 했다. 놀랍게도 돌아오는 건 사과가 아닌 욕설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럼 나는 '역시나 기본적인 예절을 모르네 ' 생각하며 애써 상한 마음을 달래곤 했다.


도서관에서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해진 반납일을 지키지 않거나 책을 보다가 아무 데나 그냥 두고 가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속으로 '왜 자기가 읽은 책을 제자리에 정리하지 않지?' 하는 생각을 했다. 깔끔하게 정리된 서가에서 책을 빼다가 주변의 다른 책들이 흐트러지게 만들고는 그냥 아무렇게나 두고 가는 걸 보면 속에서 확 열불이 치밀어 올랐다.


그렇게 나만의 기준을 법인 것처럼 생각하며 사람들의 행동과 태도를 하나하나 곱씹다 보니 '이건 당연한 건데 왜 저러지?' 혹은 '본인이 얼마나 무례한지 모르는 척하는 건가? 설마 진짜 모른다고? 모를 수가 없을 텐데..'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매번 그런 생각이 드니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 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더 찾아내서 미워하곤 했다. 모두에게 친절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깊은 곳에 사소한 미움들을 증오로 키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도서관을 방문하거나 서비스를 요청하는 이용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이 거슬릴 때마다 점점 더 힘들어졌다. 마치 가슴에 커다란 돌덩어리가 얹힌 듯 감당할 수 없는 무게감에 숨이 막혔다. 때로는 온몸이 묶여 옴짝달싹 못하는 채로 혼자 깊고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급기야 미운 마음이 드는 사람을 보면 과호흡으로 숨이 잘 안 쉬어질 정도로 상태는 악화되어 갔다. 내 마음을 가득 짓누르고 있는 불편함이 그들의 무례함 때문이라고만 생각했지 정작 나의 기준을 잘못된 생각 위에 세운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최근에 내면과 외면을 함께 관리받으면서 "( ... )라면 최소한 이래야만 하는 거지."라는 기준이 사실은 내가 다칠까 봐 경계를 만들고 보호막을 친 행동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 나를 지키려고 만든 보호막이 시간이 가면서 타인들을 판단하는 당위성이 되었던 거다.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그 기준 때문에 오히려 내 마음이 공격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그건 내가 세운 나만의 기준일 뿐이었다. 상담해 주신 샘은 나와는 다른 타인들이 내 기준에 맞춰주길 바라는 건 잘못된 생각이라고 알려주셨다. 게다가 내가 정한 기준을 맞추는 사람은 세상에 그 누구도 없다고 정확한 팩트체크를 해주셨다. 그러고 보니 피를 나눈 가족조차도 각자 생각하는 기준이 다 다른데 전혀 다른 타인에게 무엇을 기대했던 것인가 싶어졌다.


덕분에 그동안 무엇이 잘못되어 왔는지를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분명히 오해하고 착각했던 것은 내게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 다른 누구에게나 당연한 것은 아니라는 거였다. 내가 만든 보호막이 어느새 나의 자유를 제한하고 움직이지 못하게 가두는 감옥과 창살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기준에 갇혀 옥죄어지고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토록 명백한 사실을 왜 알아보지도 못했을까. 그 말들이 흘려들어지지가 않았고 새로운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복잡한 기준들을 모두 버리고 단순하게 나를 아껴주는 것을 1순위로 두자. 타인의 어떠함이 나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자. 그들의 무례함은 무례함으로 두고 내가 직접 나를 사랑해 주고 이해해 주자.


그 이야기를 듣고 지난 일주일이 지나는 동안 신기하게도 마음이 너무도 편안했다. 이유도 모르고 집착했던 나만의 기준을 내려놓으니, 사람들의 모습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물론 상황이 바쁠 때는 일적으로 예민해지는 부분이 여전히 있겠지만, 최소한 이제까지처럼 나의 잣대로 타인을 재단하고 미워하면서 또다시 나만 상처받았던 악순환을 이제는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누가복음 6:3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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