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향하여 5

by Pearl K


*스크롤을 내려 1, 2, 3, 4편을 읽고 오세요^o^


지후의 온몸이 100cm도 안 되는 자그마한 문으로 사정없이 빨려 들어가던 무렵, 그녀가 사라진 세상에서는 대혼란이 일어났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지진으로 인해 바다와 가까운 지역에 있는 인구 80만 명의 도시 하나가 통째로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국내에서는 2016년 경주 지진과 2017년 포항 지진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대지진이었다.


많은 인원이 출근해서 직장에 나가 있던 낮이라 오히려 중년 이상의 여성과 노인들의 피해 규모가 컸다. 정부에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시간에 의전에만 신경 쓴다고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이 빗발쳤다. 컨트롤타워가 무너졌다고도 했다. 거대양당이 서로 정쟁에 매진하는 동안 허망하게 가족을 잃어버린 이들의 절규가 도시 곳곳에 메아리쳤다.


황망한 사건에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느라 휴대폰 서버가 마비될 지경이었고, 그제야 가족들은 지후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음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사라진 자리에서는 애꿎은 휴대폰의 벨소리만 울려대고 있었다. 지후의 휴대폰을 발견한 그녀의 남편은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지만 돌아오는 답이라고는 실종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라는 말뿐이었다.


한편, 문 안으로 빨려 들어간 지후는 그야말로 몸 전체가 찢어지는 고통을 겪고 있었다. 누군가가 몸을 강제로 엄청나게 늘리고 있는 것 같았다. 조선시대에 가장 흉악한 형벌 중의 하나가 사지를 찢어 죽이는 거열형이라고 했는데 그 느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가지고 있는 세포 하나하나까지 죄다 분해되어 버린 느낌이랄까.


잠시 후 텅! 하는 소리와 함께 지후의 몸이 커다란 자석판 같은 곳에 붙어버렸다. “꺄아아아아악~!!!” 정신없이 비명을 질러대던 지후는 세찬 흡입력을 뽐내던 바람이 조금씩 잦아들면서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일단 온몸이 제대로 붙어 있는지를 확인했는데 다행히도 아무 이상이 없는 듯했다. “고개를 들어라.” 어디선가 웅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그녀의 맞은편에 정말 커다란 모니터가 전혀 흔들리지 않고 고정된 채로 허공에 떠 있었다.


거대한 모니터 화면에는 한동안 화면조정 시그널 같은 것이 나오더니 뒤이어 수천, 수만 가지의 이미지들이 쏟아졌다. 모니터 속의 이미지들은 무작위로 등장했으나 지후는 그중 몇 개의 사진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사진들은 진짜 사진이 아니라 그녀의 인생에서 스쳐 지나갔던 하나하나의 사소한 장면들이었다. 선명히 기억나는 장면도 조금은 흐릿한 기억도 전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것도 있었지만 분명하게 깨달은 것은 그 모든 장면이 다 지후의 삶과 연관된 이미지라는 것이었다.


“너의 죄를 인정하느냐?” 웅장한 목소리의 재판관이 물었다. 지후는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인정한다고 하면 벌을 받을 것 같고,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쟁이로 낙인이 찍힐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후가 망설이는 동안 재판관의 목소리는 그녀를 채근했다. “너의. 죄를. 인정하느냐고 물었다.” 더 이상 대답을 미룰 수 없을 것 같아 이왕 이렇게 된 거 최대한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지후는 마음을 먹었다.


“저의 죄를 인정합니다. 알고 지은 죄도 있고 모르고 지은 죄도 있겠지만 제가 죄인인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대답하면서 그녀도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가 너무 심하게 떨리고 있음을 알았지만, 끝까지 침착한 톤을 유지하려 애썼다. “너의 대답은 잘 들었다.” 재판관이 말했다. “이제 32세 윤지후의 인생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하며 신뢰와 유서가 깊은 판결을 내리겠다.”


재판관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윤지후는 이제까지 인생을 사는 동안 수많은 죄를 지었고, 여러 사람을 실망시켰으며,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반대로 선을 베푼 일도 있고, 다른 사람을 대접하고 섬기거나 기쁘게 한 일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죄를 지은 것에 비해 선한 일을 행한 분량이 너무도 부족하구나.”


“온 우주와 세계의 재판관으로서 나는 윤지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죄에 대해서는 1,000건당 화살 1개씩을 맞고 선한 일에 대해서는 100건당 지름 10cm의 방패를 제공한다. 주어진 방패로 날아오는 화살들을 다 막아내면,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윤지후를 다시 벌하지 않겠다.”


말을 마친 재판관은 판사봉을 들어 바닥을 세 번 쿵쿵쿵 내리쳤다. 판사봉이 바닥을 한 번씩 칠 때마다 공간 전체가 진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