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내가 가장 기다리던 시간 중 하나는 온 가족이 함께 보는 주말의 명화 시간이었다. 빰 빠바바밤 빠바바밤 하면서 익숙한 BGM이 흘러나오면 온 가족이 TV 주변에 둘러앉아 영화를 기다리곤 했다.
때로 우리 나이의 아이들이 볼 수 없는 영화를 하는 날이면 아쉽게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했지만, 화장실 간다는 핑계로 슬쩍 아빠 옆에 주저앉아 연소자 관람 불가 영화를 중간중간 훔쳐보기도 했다. 그런 추억 때문인지 영화 보는 것을 즐기고 좋아하는 편이다.
초등학교 때 몇 년간 찾아오셨던 눈높이 선생님께 취미를 여쭤본 적이 있었다. 그 선생님은 집에 VCR을 두고 매일 저녁 영화를 한 편씩 보는 것이 자신의 유일한 취미이자 즐거움이라고 말했었다. 어린 마음에 그 선생님의 삶이 얼마나 멋져 보였는지 모른다.
중학생 때 도덕 선생님은 내가 잘 몰랐던 귀중한 의미를 담고 있는 여러 보석 같은 영화들을 소개해 주셨고, 덕분에 그 영화들을 보면서 좁았던 지식을 더 많이 얻고 갇혀 있던 관념과 생각들을 확장시킬 수 있었다. 그때 소개받았던 영화들은 하나 같이 나의 인생 영화가 되었다.
가족과 함께 했던 주말의 명화와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다 보았던 수많은 영화 비디오들, 대학생 때 비디오방이 유행하던 시절에도 오로지 영화를 보기 위해 가끔 비디오방을 혼자서 찾곤 했었다. 또 예전 눈높이 선생님처럼 자취방에 TV와 VCR을 마련해서 매일 한 편씩 꾸준히 영화를 보고 잠이 들곤 했다.
취직을 한 후의 취미도 종종 퇴근길에 혼자 극장을 찾아 개봉한 영화들 중 궁금한 작품들을 하나씩 챙겨보는 것이었다. 혼자 극장을 찾은 적도, 여러 시사회를 신청하여 보러 다닌 적도 정말 많았다. 요즘에야 극장도 가깝고 언제든 스타일이 다른 여러 OTT 서비스에서 다양한 영화들을 볼 수 있으니 예전의 그 열정이 조금은 식었던 것도 사실이다.
지난 주말 비 오는 공휴일에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하루는 시댁 부모님과의 시간을 보내고, 하루는 편안하게 쉼을 누리는 시간을 가졌었다. 오랜만에 OTT를 뒤져 볼만한 영화를 찾아보았는데 그중 눈에 들어온 영화가 한 편 있었다.
제목은 버드 박스. 산드라 블록 주연의 영화인데, 좋아하는 디스토피아적 배경에 심장 쫄깃하게 만드는 생존을 위한 스릴러 서사까지. 정말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또 다른 OTT 채널에서는 많이 궁금해하던 한국영화 박해수, 이하늬, 박소담, 설경구 주연의 유령도 보았다.
다음 날은 남편과 함께 가까운 극장을 찾아 마블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편도 함께 보았다. 초기 영화부터 지켜봐 온 마블의 오랜 팬으로서 웅장하고 코믹하고 애잔하고 따뜻한 온갖 감정들이 모두 파노라마처럼 스쳐가는 느낌의 영화였다.
최근에는 유튜브에서 1시간 이내로 영화나 드라마 등 작품을 요약해 주는 버전도 많고, 다양하게 영화작품을 접할 수 있어서 나 같은 문화 덕후는 여러 가지로 쉽게 행복해질 기회가 더 많아진 것 같다. 취향은 조금 다른 지점도 있지만 영화동호회 활동을 오래 해 온 남편이라 꼭 같이 영화 정보 프로그램을 챙겨보곤 한다.
주말에 만났던 영화들이 하나 같이 만족스러웠기에 아주 어릴 적 가족이 모두 함께 보던 주말의 명화의 추억도 소환할 수 있었다. 다채로운 경로를 통해 접하게 되는 수많은 영화들 속에서 어제의 피로도 내일의 불안도, 조금 더 가벼워질 수 있다면 그저 그것으로 영화가 존재하는 목적은 다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번 주말에도 마음에 드는 영화 한 편을 골라 보고 기분 좋게 잠들 수 있기를 기대하며 남은 한 주간도 힘을 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