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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May 10. 2023

숨 참고 Life dive

오늘 우리 동네에서는 야시장이 열렸다. 일 년에 단 두 번, 5월과 10월 중 가장 화창한 날을 골라 이틀씩 연달아 야시장을 오픈한다. 결혼 후부터 같은 동네에서 계속 살아온지라 이미 너무 익숙한 풍경인데도 야시장이 열리면 왠지 소풍 가는 날 아이의 심정이 된다.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미니 바이킹부터 놀이방, 물고기 잡기, 다트 던지기, 풍선 터트리기, 문구점에서 파는 뽑기, 열쇠고리 뽑기까지 다양한 놀잇감들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인기가 좋은 건 역시 먹거리 존이다.


   길거리 음식 중 스테디셀러라고 할 수 있는 닭꼬치와 회오리 감자, 소떡소떡, 마약 옥수수, 소고기 불초밥과 피자, 빠지면 아쉬운 장작구이 통닭, 터키 아이스크림과 케밥, 익숙한 듯 낯선 코코넛 왕새우, 닭강정과 족발, 오징어순대.

   

   어른들이 좋아할 녹두전과 각종 만두, 홍어무침에 호롱낙지와 묵사발,  생물 오징어, 해삼, 멍게, 소라, 바비큐와 핫도그, 어묵, 떡볶이 등 분식까지 다양한 먹거리를 퍄는 포장마차들이 줄줄이 길거리를 점령하고 있다. 그 외에도 건강에 좋다는 각종 말린 약재와 주방 살림에 필요한 소소한 소품들, 도마와 실리콘 주방 도구 같은 것들까지 만물상 수준이다.


   엄마들은 아이들 손을 잡고 삼삼오오 야시장을 따라 동네 한 바퀴를 돈다. 그동안 아이들은 보는 것마다 먹고 싶다며 사달라고 부모님을 졸라댄다. 잔칫날 빠질 수 없는 동네 강아지들의 집합소가 되기도 한다. 집 안에서도 너무 생생하게 들리는 아이들의 즐거운 비명 소리가 축제 분위기를 더 돋워주고 있다.

   

   코로나 기간에는 잠시 멈췄던 야시장은 올해 더욱 성대하게 다시 오픈했다. 모두들 설렘 가득한 얼굴로 천막이라는 천막마다 죄다 구경하고 다니는 중이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봉봉이와 함께 동네 한 바퀴 산책을 할 겸 야시장을 구경하고 왔다.


   어제는 학교에서 교사 워크숍이 있었다. 한 시간 정도의 간단한 북한산 둘레길 트레킹을 통해 친목을 다지고 함께 저녁도 먹었다. 다음 주에 행사가 있어서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는 틈이라, 굳이 바쁜 시기에 왜 가야 하나 생각하기도 했는데 막상 해가 쨍쨍한 낮 시간에 사무실을 벗어나 밖으로 나가니 그저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얼마 전 채널을 돌리다가 EBS 다큐프라임 "해녀"내레이션 중에서 이런 문장을 보게 되었다. "숨을 참아야, 삶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생존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면서 자유롭게 숨을 쉬기보다는, 억지로 숨을 참아야 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숨을 참지 않으면 삶을 이어갈 수 없기에 턱끝까지 숨이 차도 호흡을 내뱉을 수 없는 경우들이 생긴다.


   하지만 반대로 늘 숨을 참고 있기 때문에 그게 지나치면 때로는 숨 쉬는 것 자체를 잊어버리기도 한다. 계속 숨을 참기 위해서는 한 번씩 바다 위로 올라와 크게 숨을 들이쉬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시 숨을 참아야 할 때, 폐에 남은 공기가 부족해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물을 먹게 될지도 모른다.


   해녀가 생활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다시 숨을 참고 해산물을 따러 가야 한다. 해산물을 많이 따려면 제대로 오랫동안 숨을 참아야 한다. 그래서 반드시 바다 위에서 제대로 호흡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삶을 이어가려면 숨을 참아야 하지만 동시에 숨을 가득 들이마시는 시간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오늘의 야시장도 어제의 워크숍도 지난 며칠 간의 연휴도 비어버린 폐 안에 공기를 가득 채우는 잠깐의 숨 쉬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짬을 내서 크게 숨을 들이쉬고 오길 참 잘했다. 요즘 너무 숨이 차고 숨이 잘 안 쉬어졌었는데, 바다 위로 올라가 풍경을 바라보며 호흡한 덕분에 내일부터는 더 깊은 바닷속으로 자맥질해서 들어가 커다란 전복을 딸 수 있을 것 같다.


    "숨을 참아야, 삶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숨을 크게 들이쉬어야 삶을 더 잘 이어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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