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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May 17. 2023

백일의 기적

흔히들 갓난아기가 태어나 100일이라는 시간을 지나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들 한다. 그 기적은 잦았던 수유시간의 텀이 길어지고, 자꾸만 깨던 아이가 밤에 통잠을 자는 것으로 표현된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 충분한 수면의 질과 양을 도무지 확보할 수 없던 부모는 100일의 기적 이후에 그나마 조금은 사람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은 조카가 태어난 지 딱 100일이 되는 날이다. 그동안 올케와 오빠가 가장 애썼다는 것이 느껴질 만큼 조카는 정말 예쁘게 잘 자라주고 있다. 양가의 어른들과 두 명의 고모, 한 명의 외삼촌도 마음으로 응원을 보내고, 선물도 보낸다. 나 역시 조카의 백일을 기념하여 여름에 입기 좋은 홈웨어 두 벌을 선물로 보냈다. 이미 꽤 더워진 날씨에 날로 포동포동해져 가는 조카가 여름 홈웨어를 입고 사진 찍을 날이 기대가 된다.


   새로운 역할로 새로운 장소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 지 사전출근일부터 계산한다면 오늘이 83일째다. 아직 100일이 지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100일이 가까워져서인지 이번 주는 유난히 힘이 든다. 이제 막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었던 것 같은데, 며칠 지나지도 않아 봄에서 여름으로 날씨가 급변하고 있어 몸이 견디지를 못하고 온갖 알레르기와 염증 반응을 소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눈에 다래끼는 한 달 반 새에 벌써 네 번째고, 지나치게 건조해서 안구가 뻑뻑하게 아프다. 아침마다 그냥은 눈이 떠지지 않아 눈꺼풀 사이를 손으로 찢어내야만 한다. 게다가 결막염과 다래끼가 겹치면서 눈앞이 흐릿해서 화면에 있는 모든 글자가 블러 처리된 것처럼 보이니 같은 일을 해도 피로감이 몇 배로 심하게 느껴진다.


   심지어 이번 주는 도서관 행사 주간이자 체육대회가 있는 주인데, 나름 열심히 준비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호응이 적어 속상하기도 하다. 아직 행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이번 행사에서 내가 놓친 것은 무엇일까? 홍보방법이 잘못되었을까? 어떤 것을 다르게 해야할까? 고민하느라 머리가 아프다. 4월에 이미 처리되었어야 할 일이 기관의 특수한 상황으로 5월로 밀리면서 모든 업무가 조금씩 꼬였다.


   꼬인 업무를 풀어내려면 그만큼 시간과 노력이 배로 들어가기 때문에, 시간을 맞추어해야 할 업무들이 이중 삼중으로 엮여 있어 가면 갈수록 풀리기보다는 오히려 실타래가 더 꼬여가는 느낌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시스템 전체를 뜯어고쳐야 할만큼 복잡한 상황인데 실상은 업무담당자 외에는 그 사실을 인지하지도 깨닫지도 못하니 뭔가 혼자만 답답하고 막막해진다.


   갓난아기에게 백일의 기적이 찾아오듯 앞으로 17일이 지나면 내게도 기적이 일어날까? 꼬여 있는 업무들이 제자리를 찾고, 체계가 갖추어지고 상황이 조금은 나아질 수 있을까. 중요한 건 그때까지 버틸 힘이 내게 남아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온몸과 마음이 쉼을 부르짖고 있는데 나는 현실적으로 쉴 수가 없다. 변명을 하자면 그래서 쓸 수가 없었다.


   기상 알람을 못 듣거나 무의식 중에 끄고 잠드는 행동, 출퇴근할 때 눈이 잘 보이지 않는 것, 각종 알러지와 염증반응이 폭발하는 것 등 체력의 한계에 다다르면 나타나는 증상들이 종합 선물 세트로 등장 중이다. 이번 주 체육대회가 끝나면 조금은 정신을 차릴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를. 자꾸만 침침해지는 눈을 애써 안약과 인공눈물로 일깨우며 오늘도 그렇게 하루를 버텨볼 뿐이다.


p.s : 사랑하는 첫 조카야, 고모가 진심으로 너의 백일을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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