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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Apr 04. 2023

어김없이 봄

내게 봄은 언제나 알레르기와 함께 도착한다. 주말 내내 환절기를 실감케 하는 비염에 시달렸다. 오늘은 아침 메이크업을 하는데 볼 주변이 발갛게 되어 있는 것을 느꼈다. 출근 준비시간이 촉박해서 서둘러 준비하고 하루를 보낸 후 집으로 돌아왔다.


   부랴부랴 저녁을 챙겨 먹고 이제야 한숨 돌리고 쉬려는데 얼굴 전체가 간질간질했다. 임시방편으로 부드러운 물티슈로 화장을 닦아내자 얼굴 전체에 울긋불긋 열꽃이 가득 피었다. 황급히 클렌징 오일로 깨끗하게 세안을 하고 찬물로 열을 식혀 주었다.

   

   그런데도 좀처럼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냉동실에 얼굴을 넣어놓고 싶었다. 방법을 고민하다가 결국 수분진정토너로 적신 화장솜을 얼굴 여기저기 붙여주고 나서야 열감이 조금 내려가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지긋지긋한 환절기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이유다.

   

   우리가 사는 곳은 4계절이 뚜렷한 나라이고 최근 이상기후로 여름과 겨울이 봄, 가을보다 꽤 길어진 느낌이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계절마다 구분이 가능한 정도다. 하지만 내가 근무하는 곳은 여름과 겨울 오로지 두 계절만 존재한다는 말이 있다.  


   농담 반 진담 반이 섞인 우스갯소리이긴 하지만 학교에서 일하다 보면 그곳에는 정말 여름과 겨울만이 존재한다. 바깥에는 진즉 봄이 왔지만 학교 안은 여전히 겨울이었다. 분명 저번주까지는 바깥의 날씨와 관계없이 히터를 틀고 지낼 만큼 아침저녁으로 교내가 추웠다.

   

   평소에는 위잉~ 하는 소리를 내며 돌아가던 히터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잠잠해졌기 때문에 지난 금요일에야 온도가 꽤 많이 높아졌다는 걸 깨달았다. '아, 드디어 계절이 바뀌었구나. 결국 봄이 왔나 보다'하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짧은 봄을 너무 늦게 만난 게 아쉬워 주말 내내 창문으로나마 꽃구경을 하기도 했다.


   4월의 첫 월요일 출근하자마자 오늘은 히터를 안 틀어도 되는 날씨라고 느꼈다. 그러나 봄이 왔다고 생각한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아이들은 한 발 더 빨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학교는 반팔 생활복, 반팔 체육복 그리고 여름교복을 입은 학생들로 가득해져 있었다.


   지난 주만 해도 동복 위에 후드 티를 껴 입던 아이들인데 이번 주엔 유독 환하게 얼굴이 밝아 보이길래 봄햇살을 받아 그런가 보다 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여름교복 색상에 맞추어 학교 전체의 의상이 한층 옅어지고 밝아졌고 톤업되어 있었다.


   점심을 먹고 잠시나마 햇살을 누리며 건물을 한 바퀴 도는데 하얀 벚꽃이 가득 피어있는 아래서 더운지 연신 손 부채질을 한다. 덥다고 하면서도 삼삼오오 모여 즐겁게 사진을 찍는 옆학교 여고생들의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중고 합쳐 딱 하나 있는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들고 나오는 아이들도 볼 수 있다. 그제야 학교에는 봄이 아니라 여름이 도착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2주만 지나면 체육을 마친 아이들이 뛰어들어와 에어컨은 왜 안 틀어주냐고 투정을 부리기 시작할 거다.


   어김없이 찾아온 봄에 이왕 겪을 환절기라면 짧고 굵게 지나가줬으면 좋겠다. 이제야 봄 알레르기를 앓고 있는 나도 곧 여름의 너희를 따라갈 테니, 한창 피어날 봄의 시기에 너무 서둘러 몇 계절을 건너뛰어 어른이 되려고 하지는 말아 주기를 당부해 본다.


   수요일에 비 소식이 있더라. 세찬 여름비가 아닌 봄을 부르는 보슬비가 내려서, 그 이슬을 먹고 쑥쑥 자라날 해사한 얼굴들이 가득한 봄날의 교정을 조금 더 누릴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내게는 너희들이 봄이다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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