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작가의 글에는 독특한 향기가 있다. 어떤 순간에는 한없이 일상 속에 스며들기도 하고, 어떨 때에는 몹시 서걱거려 이질감과 이물감을 동시에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스며들든 이질적이든 간에 우리의 일상과 맞닿아 있다. 아마도 그래서 나는 이 작가의 글에 관심이 가는 것 같다.
분명 땅 위에 발 붙이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책을 읽는 내내 마치 구름 속을 비행하는 느낌이었다. 또는 왠지 우주를 유영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김애란 작가는 이 책의 표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제 한 발 더 나아가 진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심 있게 꾸준히 챙겨보고 있는 작가들이 몇 명 정도 있는데, 김애란 작가는 그중에서도 유일한 여류작가다. 연령대가 비슷해서인지 시대적 공감대도 비슷하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이 흔히 볼 수 없게 독특하고 기묘한 점이 끌린다.
여타 작가들과 다르게 김애란은 생활 그 자체를 쓴다. 그야말로 생생한 인생을 쓴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나는 오늘도 묘하게 반하게 된다. '비행운'은 일곱 편의 각기 다른 단편들이 묶인 책이다. 각 단편마다 등장하는 인물이 다르고, 기본 배경이나 스토리, 느낌도 다른 별개의 이야기다.
하지만 이 전체를 하나로 묶는 그녀만의 작법이 전체를 관통하는 독특한 흐름을 만들어 낸다. 그 흐름을 따라서 만난 비행운은 신선하고 까끌거리고 때론 부드럽기도 했다. 마냥 부드럽지 않고 마냥 까끌거리지도 않은 딱 그래서 좋은 글이었다.
나도 언젠가 사람들에게 이런 생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편안함을 전해주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려 볼 뿐이다.
*책 속에서 찾은 문장
p.41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조용히 떠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것뿐이었다. 지금도 나는 그때 물속에서 느낀 아주 기이한 고요를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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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나는 그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좀 외로웠다. 아무도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걸 모른다는 고립감. 그리고 그걸 누구에게도 전하지 못한다는 갑갑함이 밀려왔다.
p.97
오늘이 내일 같고 어제가 그제 같은 날들이 이어졌다. 아침이 저녁 같고 새벽이 저물녘 같은 하루가 반복됐다.
p.125
여름 강물의 속살은 차고 깊었다. 부드럽고 물컹하니 아득하며 편안했다. 생경한 듯 잘 아는 공간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
세상의 그 어떤 소음과도 차단돼 짧은 영원처럼 느껴지던 시간.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까지 물속에 있었다.
p.226
'손'이 아니라 '손의 세부'를 만져주는 손길. 엷은 졸음이 몰려오며 어느 순간 '나는 케어받고 싶다. 나는 관리받고 싶다. 누군가 나를 이렇게 영원히 보살펴 주었으면 좋겠다. 어린아이처럼' 하고 고해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누군가 나를 오랫동안 정성스럽게 만져주고 꾸며주고 아껴주자 나는 아주 조그마해지는 것 같았고, 그렇게 안락한 세계에서 바싹 오그라든 채 잠들고 싶어졌다.
p.318
언니, 저를 기억해 주어 고마워요. 그리고 제게 고맙다고 말해줘서 고마워요. 전 그런 얘기를 들을만한 사람이 아닌데... 그럴 자격이 없는데...
제가 오늘 언니에게 무얼 받았는지 전하기 위해 이 편지를 써요. 언니는 그게 뭔지 이미 알고 있을 테지만, 언니가 준 것과 내가 받은 것은 다를 수도 있으니까요.
잘 지내요, 언니. 언니가 정말 잘 지내주었으면 좋겠어요. 기회가 된다면... 만일 그럴 수 있다면, 또 쓸게요,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