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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Jun 24. 2023

세상 가장 무해하고 사랑스러운

지치고 고단한 정리의 나날들이 며칠 째 이어지고 있다. 본래 하루에 7시간은 자야 일상이 편안한 사람인데, 이사를 준비하고 치러 내는 과정에서 거의 2주째 매일 4시간도 채 못 자다 보니 몸에서도 이상신호가 찾아왔다.


   며칠 전부터 분명 밖은 더운데도 몸에 오한이 들면서 으슬으슬하더니 결국 병이 났다. 아침부터 온몸에 힘이 없고 다리가 풀려 넘어질 뻔하더니, 갈수록 온몸이 축축 처지고 어깨와 팔다리는 욱신거리고 가득한 몸살 기운에 고열까지 더해져 37.6도를 훌쩍 넘겼다.


   충분한 수면과 휴식을 취하지 못하면 건강상의 문제도 생기지만, 유난히 예민해지면서 짜증지수가 늘어나게 된다. 평소보다 특히 청각과 후각에 민감해지는데 자그마한 소리나 냄새도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 같다. 마치 모든 감각이 과도하게 느껴지는 초능력 슈퍼히어로가 된 기분이랄까?


   안 그래도 피곤하고 지치는데 감각들마저 잔뜩 예민해지면 신경이 온통 곤두서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팽팽하게 당겨지며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이 안개처럼 일렁인다. 즉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반드시 쉬어주어야 하는 타이밍이다.


   그렇게 한껏 날이 선 내게 언제 보아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있으니, 바로 우리 집 세입자인 강아지 봉봉이의 잠든 모습이다. 봉봉이가 곤하게 자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시끄럽고 복잡한 마음들도 평화를 찾는다. 부모님들이 자녀들이 푹 자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더욱더 사랑스럽겠구나 싶다.


   고열과 몸살기운에 조금 일찍 집으로 돌아와 어수선한 곳을 대충 치워놓고는 소파에 누워 그대로 잠이 들었다. 봉봉이도 내가 누운 소파 아래에 자리를 잡고 3시간 정도 함께 세상모르게 잤다. 자고 일어나니 아까보다 상태가 좀 나아졌고, 다시 정리를 이어갈 힘도 생겼다.


   퇴근한 짝꿍과 저녁을 챙겨 먹고 새로 시작한 태리 배우가 나오는 드라마를 보며 여기저기 흩어놓았던 잡동사니들을 차곡차곡 정리함에 담다 보니 금세 시간이 흘렀다. 정리 중에 오래전부터 좋은 이들과 제자들이 써 주었던 편지를 발견해서 한참 추억에 잠겨 있기도 했다.

   

   그렇게 오늘치의 정리를 대강 마무리해 놓고 보니 조금 전까지도 분주하게 우리를 쫓아다니던 봉봉이가 어느새 자기 집에 누워 쌔근쌔근 자고 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 이거면 됐다' 사랑하는 가족이, 그리고 우리 봉봉이가 지친 하루를 마치고 편안히 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아닐까. 오늘도 그 다정한 풍경을 통해 세상 가장 무해하고 사랑스러운 강아지의 곤하게 잠든 모습을 보며 진정한 쉼을 누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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