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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Sep 15. 2023

What color am I?

나는 어떤 색을 가진 사람일까. 사람을 색으로 표현할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사람들은 나를 어떤 색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어릴 때는 쨍한 색을 좋아했다. 누군가가 ‘너는 무슨 색을 좋아해?’라고 물어보면 내가 했던 대답은 파란색이었다. 바닷가 근처에서 태어나서인지 바다를 좋아해서 거기에 마음이 끌렸나 보다. 디즈니 명작동화전집의 인어공주가 살고 있던 바다와, 뉴비틀 차에 적힌 파란색의 35라는 숫자, 마법사의 제자에 나오던 별과 달이 가득 박힌 마법사의 파란 망토 같은 것들이 참 좋았다.

 

   좋아하던 가수가 파란색과 노란색의 커다란 마법사 모자를 쓰고 노래를 부를 때, 파랑에 이어 노랑에도 흥미가 생겼다. 트리나 포올러스의 책 <꽃들에게 희망을>의 노란색 표지와 노랑 유치원 모자가 예뻐 보였다. 빨강머리 앤을 읽을 때는 쨍한 빨간색이, 천사소녀 새롬이를 볼 때는 핑크색이 맘에 들었다.


   중학교 때 과학 선생님이 타고 다니시던 차는 프라이드였는데, 그 차는 색이 아주 특이했다. '저건 무슨 색이야?' 하고 물었더니 누군가가 에메랄드 색이라고 대답해 줬다. 에메랄드 색이라니 이름부터 색깔까지 너무 맘에 들었다. 마치 먼 우주에서 지구로 날아온 공주의 이름 같지 않은가. 결국 시간에 따라, 상황에 따라,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좋아하는 색은 자꾸만 바뀌었다.


   행복하고 해맑기만 하면 괜찮았던 시간들이 지나, 고통과 어려움의 시간을 겪게 된 후에는 좋아하는 색이 보라색으로 바뀌었다. 그것도 연보라색이 아니라 진한 보라색을 좋아했다. 내가 보라색을 좋아한다고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보통 두 가지로 나뉘었다. ‘보라색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 사이코가 많다던데.’ 하거나, ‘어? 나도 보라색 좋아하는데! 신기하다.’고 했다.


   정말 신기하게도 보라색을 좋아하는 사람과는 서로 사이가 좋았다. 크게 부딪치지 않고도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내가 보라색을 좋아한 기간은 생각보다 꽤 길었다. 힘들던 시기를 조금 벗어나 마음이 편안해졌을 무렵부터는 갑자기 다른 색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번에 좋아하게 된 색깔은 바로 연주황과 연두색이었다.


   얼마나 좋아했던지 연주황색과 연두색으로 앞뒤가 붙어 있는 펜을 사서 하루종일 그것만 들고 다녔다. 그 펜이 모두 닳아서 더 아무것도 써지지 않을 때까지 그것만 썼다. 주황색과 연두색에 빠져 있을 무렵,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다. 예전처럼 필기구를 자주 사용할 일이 없다 보니 이제 색상 취향이 드러나는 곳은 네일아트, 가구 아니면 옷뿐이었다.


   신혼집의 가구는 화이트와 우드 두 가지 톤으로 모두 맞추었다. 딱 하나 검은색은 전자레인지뿐이다. 어떤 색과 놓아도 잘 어울리는 무난한 톤이어서 우드화이트를 선택했던 것 같다. 최근에 이사하면서 새로 산 가구와 안방 벽지 컬러는 요즘에 엄청 빠져 있는 민트색으로 선택했다. 민트색에 꽂힌 지는 3년 정도 되었는데 보면 볼수록 너무 예뻐서, 모든 소품들이 조금씩 다 민트색으로 바뀌어 가는 중이다.


   네일아트를 할 때는 계절이나 기분마다 늘 달라서 좋아하는 색상과는 그다지 관계가 없는 순간이 많지만, 확실한 건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언제나 버건디 컬러의 네일아트를 한다는 것이다. 지난 3월부터는 5주 간의 이미지코칭클래스를 통해 강사님에게서 퍼스널컬러진단을 받을 수 있었다.


   퍼스널컬러진단은 처음 받아 보았는데 진단결과 나는 가을 딥웜톤이었다. 웜톤 중에서도 좀 더 진한 딥웜톤이다 보니 화장품 사용에 있어서도 보통 21호를 많이 사용하는데 나는 25호 쿠션을 사용한다. 매번 놀라운 것은 25호 쿠션을 쓰면 내 얼굴이 화사해진다는 거다. 그럼 원래는 얼마나 더 어둡다는 것인지 아침에 화장할 때마다 스스로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딥웜톤이라서 다른 컬러들도 모두 진한 톤이 잘 어울리는데 대표적으로 진빨강(와인, 버건디), 진노랑(머스터드, 겨자), 진파랑(다크네이비), 진초록(다크그린), 진회색(다크그레이) 등 전체적으로 다크한 톤다운 컬러가 내 피부톤과 어울린다. 강사님께서 딥웜톤은 스스로 모를 리가 없다고 하셨다. 진짜로 내가 좋아하고 잘 어울린다는 말을 들은 옷들은 대부분 버건디, 겨자, 다크네이비 컬러였다.


   퍼스널컬러 진단을 받은 이후로는 이전보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그런 컬러를 찾아서 구비해두려고 한다. 어울리지 않는 색의 옷을 입은 것과 잘 어울리는 색의 의상을 입는 것이 이목구비를 돋보이게 하는데 어떤 차이를 주는지 이미 선명히 배웠기 때문이다. 이미지코칭클래스를 들은 덕분에 그나마 자신을 잘 가꾸어 줄 수 있어 다행이다.


   이제까지 내가 좋아했던 색상들을 돌이켜 보니, 어느 한 가지 색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색을 좋아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를 나타내는 색깔도 언제 나를 만났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3~4년 전에 나를 만난 사람과, 지금의 나를 본 사람은 아예 다른 색을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여러분이 보는 지금의 나는 과연 무슨 색인가? 어떤 색으로 보이는가? 이왕이면 한 가지 색이 아니라 다채로운 색을 가진 사람이고 싶다. 온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변온동물처럼 각각의 상황이나 사람, 시기, 시간, 장소에 맞게 나의 색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유연한 사람으로 살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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