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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Sep 21. 2023

바뀌는 계절에 적응하는 중

눈에 띄게 날이 서늘해졌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출근길에 당연한 듯 에어컨을 틀었는데, 이제는 차 안의 에어컨 온도보다 바깥 온도가 더 낮아졌다. 너무 덥고 습해서 점심 먹고 잠깐 산책하는 것조차 불쾌지수가 마구 올라가는 날씨였는데, 2주 정도 틈틈이 비가 쏟아지면서 가을로 바뀔 준비를 했었나 보다.


   어제는 하루 종일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내가 하는 업무의 특성상 항상 한두 달 앞의 일들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반드시 해내야 하는 것들의 타이밍이 정해져 있고, 그걸 놓치고 나면 혼자 조절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일정들이 겹치게 되어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 닥치게 되는 거였다. 화요일 퇴근 전에 준비하던 계획서 여러 개를 모두 기안해 두고 나서 긴장이 풀렸었는지 수요일 아침에 제시간에 일어나질 못했다.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출근했는데 고요하게 집중했어야 할 아침 시간을 원치 않게 여러 사람의 고성과 비명으로 방해받게 되었다. 의외로 매사에 영향을 잘 받고 특히 귀가 예민한 편이라 한 시간 넘게 이어진 그 분위기를 견뎌내느라 온몸이 스트레스를 호소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예상치 못한 공사 이후의 수압 테러로 입고 갔던 옷이 절반 이상 젖는 일도 있었다. 따로 말릴 곳도, 갈아입을 옷도 없어 종일 젖은 옷을 입고 자연스럽게 마르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어제는 하루 종일 쉴 틈도 없이 각종 회의와 연수, 업무, 프로그램, 수업 등이 겹쳐 있는 상황이었다. 나의 마음이란 건 한없이 약해서 여러 가지 상황의 트러블로 마음이 볶이기 시작하면 금세 온몸으로 그 모든 것들이 전이되어 병증으로 드러나고 만다. 그래서였는지 오후부터 머리가 미친 듯이 아프기 시작했다. 정말 주저앉아 울고 싶고, 집에 가서 쉬고 싶었다. 귀가하자마자 축축해진 몸을 씻어 말리고, 겨우 한숨 돌리는가 했는데 눈치 없이 강아지가 여기저기 대형 사고를 치고야 말았다.


   결국 갈 곳을 못 찾은 스트레스와 짜증은 미안하게도 가장 약한 곳으로 향했다. 퇴근한 짝꿍은 주저앉아 엉엉 울고 있는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참혹한 현장을 수습하고 체온계를 가져와 열을 쟀더니 37.5도. 평소 미열이 있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잘 나오지 않는 온도였다. 열은 잴수록 올랐다. 머리가 깨질 듯 아픈 상태여서 무리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너무 늦지 않게 쉬기를 결정했다.


   푹 자고 일어나니 아침 체온은 36.8도. 다행히 몸 상태도 어제보다는 훨씬 가뿐했다. 들쑥날쑥하던 감정의 그래프도 다시 평온함을 찾았다. 이렇게도 연약하고 부스러지기 쉬운 것이 인간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사실 아직도 몸이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닌 것 같다. 당분간 따뜻하게 지내면서 충분히 푹 쉬어주고, 자신을 차분히 돌봐주어야겠다. 일단 건강하고 여유가 있어야 그게 무엇이든 감당해 낼 수 있을 테니까. 몸이 가을에 적응을 마칠 때까지 당분간은 천천히 쉬엄쉬엄 가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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