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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고 있나요?

by Pearl K

꼬박 4년 만이었다. 막 개관하여 몇 달 안 되었을 때 한 번 들렀던 적이 있다. 새로 생겨 깔끔한 건물과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한 식물들로 빈약해 보이던 온실, 야외의 주제공원도 아직은 꽤 아쉬웠다.


길을 따라 무작정 걸어가다 연결된 호수공원을 발견했고, 그 푸르름에 반해서 이것으로 충분한 관람이었다는 결론을 뒤늦게나마 낼 수 있었다. 언젠가 또 방문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좀처럼 그럴 기회는 생기지 않았다.


이번 추석을 맞이하여 이제 갓 8개월 되는 조카가 장거리이동을 하기는 어렵기에 친정부모님이 서울로 오시기로 했다. 2박 3일 일정으로 추석 당일 느지막이 도착하고 쉬신 후, 다음 날인 토요일에는 온 가족이 다 같이 만나기로 했다.


오빠네 집과 우리 집 중간지점쯤에서 만나 식사를 하고, 산책도 할 겸 서울식물원을 구경하러 가게 되었다.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많았는지 식물원 앞은 몰려드는 차들로 인산인해였다. 그나마 제2 주차장은 조금 한가해서 차를 세우고 800m 정도 걸어 도착했다.


지난번에 왔을 때만 해도 볼품없어 보이던 식물원은 지난 4년 동안 다양한 식물들로 꽉 채워져서 볼거리가 풍성해져 있었다. 발목까지도 오지 않던 식물들은 사람 키를 훌쩍 넘는 크기가 되었고, 천장에서는 커다란 곰 한 마리가 온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방문객이 많아 온실은 엄청 더웠지만, 야외 주제정원에서는 시원한 바람을 마음껏 맞을 수 있었다.


고사성어에 상전벽해라는 말이 있다. 뽕나무 밭이 바다가 되었다는 뜻으로 세상이 몰라볼 정도로 확 바뀐 것을 의미한다. 지난 4년간 충실히 생장하여 아름다운 식물원의 풍광을 누릴 수 있게 해 준 식물들을 보며 그동안 나는 충분히 자라고 있었던 것일까 궁금해졌다.


즐겁고 행복한 추억만 쌓아도 부족할 시기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는 핑계로 하나도 자라지 못한 것 같아 항상 부끄러웠다. 부모님의 잘못이 아니었다는 걸 알면서도 나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억울함과 답답함을 부모님께 전가시켜 온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라도 힘들던 시간을 대신 보상받고 싶었었나 보다.


오랜만에 만난 아빠에게 "이제 다 컸다고 나는 안 챙겨주는 거야?" 하고 어리광을 부렸더니 아빠는 "왜 안 챙겨. 지금도 맨날 생각하고 있는데.."라고 대답해 주셨다. 그 말에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더 이상은 한 뼘도 자라지 못하는 나무로 남고 싶지 않다. 앞으로 보다 성숙한 모습으로 때에 맞게 자라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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