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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Oct 05. 2023

나의 모닝 루틴

아침에는 언제나 모닝콜 알람을 세 개쯤 맞춰놓는다. 평소에는 첫 번째 알람으로도 충분히 깨지만, 피로가 누적되다 보면 알람 소리를 듣지 못하거나 무의식 중에 끄고 잠드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것은 최소 7시간 이상 충분히 숙면하고 알람 소리가 들리기도 전 가뿐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건데 1년을 통틀어 보아도 그런 날은 그리 많지 않다.


   출근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은 50분 남짓으로 일어나자마자 강아지 영양제부터 2종류를 챙겨 먹이고 씻으러 간다. 세안 후 기본 보습제를 바르고, 토너로 피부를 진정시켜 주고 화장하기 전에 옷부터 갈아입는다. 화장한 후에 옷을 입으면 묻을까 봐 신경 쓰이기도 하고 편안하게 입기가 힘들다. 옷방에 가서 오늘 입을 의상을 고른 후에 컬러가 잘 매치하는지 정도만 간단히 확인한다.


   다음 순서는 메이크업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 단계를 건너뛰었는데 그만큼 화장에 자신이 없어서였다. 지난 3월 이미지 코칭을 들은 이후로 몇 년간 사용하지 않아 다 썩어서 버린 화장품 대신 내 피부톤에 맞는 기초와 색조 화장품들을 장만할 수 있었다. 화장에는 똥손을 면치 못하던 내게 메이크업 방법도 전수해 주셔서 매일매일 배운 대로 화장을 하니 전보다는 조금 자신이 생겼다. 잘 먹는 메이크업의 핵심포인트는 피부를 충분히 보습해 주고 정돈해 주는 것이다. 또 어두운 곳에서가 아니라 적절한 조명 아래에서 화장하기, 색조 화장품 과하게 바르지 않기만 지켜도 무난한 메이크업이 가능하다. 메이크업이 끝나면 픽서를 뿌리고 빗으로 헤어스타일을 정돈한 후, 선물 받은 향수까지 살짝 뿌린다.


   이 과정이 끝나면 안방 문을 닫고 출근 가방을 챙겨 거실로 나온다. 출근하기 전에 강아지 밥과 약을 먼저 챙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봉봉이의 나이는 벌써 8살 하고도 6개월로 사람 나이로 치면 환갑을 넘겼다. 한때는 자율급식도 했었는데 사료가 공기 중에 오래 노출되면 별로 좋지 않고, 시간을 지정하여 급식 루틴을 만들어 주는 것이 봉봉이의 훈련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지정 급식으로 바꾸었다. 눈치가 빨라서 사료에 약을 섞으면 입에도 대지 않기 때문에 맛있는 영양제 캔에 티 나지 않게 약을 섞어주고, 배고플 때 추가로 먹을 사료도 함께 밥그릇에 놓는다.


   두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밤새 쓴 배변판을 깨끗하게 씻어주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배변패드를 많이 사용하는데, 봉봉이는 독톡 배변판이라는 걸 사용하고 있다. 독톡 배변판의 장점은 매번 패드를 갈아주느라 쓰레기를 늘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과 배뇨할 때 발에 묻히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강아지의 특성상 깨끗한 곳에 배변하려고 하기에, 배변판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 세척해 준다. 오래 사용하면 요석이 착색되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락스를 희석하여 뿌려두거나 요석 제거제를 활용해서 색이 물들지 않도록 관리해 주기도 한다.


   부지런한 분들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나가시는 분도 계시던데, 태생부터 야행성인 내게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다. 나의 루틴에 맞추어 봉봉이에게는 아침 산책 대신에 매일 서로 다른 노즈워크를 준비해 준다. 강아지는 코를 사용해서 냄새를 맡으면서 스트레스를 풀기 때문에, 다양한 노즈워크 장난감과 노즈워크 볼, 노즈워크 휴지, 노즈워크 매트 등에 간식을 숨겨두고 강아지가 코를 사용하여 직접 찾아낼 수 있도록 한다. 간식을 찾아 먹으면서 스트레스도 풀리고 성취감도 올라가니 즐겁지 않을 수가 없다.


   한 가지 문제는 봉봉이가 그리 똑똑한 강아지는 아니라는 거다. 입과 발을 모두 사용하여 노즈워크를 해결해야 하는데, 처음에는 머리로만 밀어서 황당했었다. 요즘에는 그래도 노즈워크 좀 해봤다고 발을 사용하긴 한다. 근데 두뇌를 사용해서 생각하면서 발을 쓰는 게 아니라 무작정 일단 발로 다 긁고 본다. 발톱이 자연스럽게 관리가 되어서 좋긴 한데, 어떤 날은 아침에 주고 간 노즈워크에 있는 간식을 못 먹어 하루 종일 성질만 내다가 포기할 때도 있다. 그걸 깨닫고 나서부터는 봉봉이의 수준에 맞게 너무 어려운 노즈워크는 주지 않기로 결심했다. 행복하게 놀고 있으라고 주는 건데 냄새는 나는데 간식을 못 먹으면 온종일 스트레스만 받기 때문이다.


   노즈워크까지 준비를 마쳤으면 아우터를 입는다. 아우터를 입고 옷방 거울에 전체적인 느낌을 확인하고 나면 출근 준비 끝이다. 마지막으로 화장실과 옷방, 책방, 안방까지 문을 잘 닫아주고, 베란다가 열리지는 않을 정도로 환기용 구멍만 만들어 둔다. 강아지를 소환하여 노즈워크 장난감을 확인시켜 주고, 편안하게 놀 수 있도록 바닥에 놓아준다. 노즈워크 삼매경에 빠져 정신없는 틈을 타서 나는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출근한다. 봉봉이에게는 약간 분리불안이 있어서 어떤 날은 못 가게 막기도 하고, 하울링을 하기도 하는데 차차 개선하는 중이다.


   엘리베이터 타기 전에 바깥 날씨를 한번 확인하고 차에 가서 시동을 걸면 드디어 출발이다. 대부분 출근 시간보다 10~15분 정도 일찍 도착하게 출발해서 그나마 여유로운 주차가 가능하다. 이렇게 모닝 루틴이 정해지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강아지가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불안함을 줄이기 위해서 시작했고, 계획적인 J 성향이다 보니 예측이 가능한 루틴으로 생활하는 것이 내게도 안정감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서 중간에 당황스러운 상황-예를 들면, 남편의 출근이 더 빨라지거나 늦어지는 경우, 혹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를 대처할 수 있는 유연함까지 갖추게 되었다.


   가족이 늘어나는 경우가 아니면 나의 모닝 루틴은 이대로 꾸준히 유지될 거 같다. 매일 노력해서 패턴을 만들고, 루틴이 익숙해지는 만큼 강아지도 나도 더 편안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작은 노력 덕분에 매일이 더 행복해지는 나날들을 맞이하기를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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