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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Oct 09. 2023

바다의 품

육아로 잠시 멀리 친정 근처로 내려간 친한 샘을 보러 휴일을 빌려 여수에 내려왔다. 20개월 쌍둥이를 돌보느라 시간을 모두 반납하는 것을 보며 우리 엄마도 저렇게 연년생과 막내까지 셋을 돌보느라 참 애썼겠구나 하는 막연한 깨달음에 마음이 먹먹했다.


   잘 노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울고 떼쟁이가 되어 주저앉고, 맛있는 밥을 먹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해맑게 웃는 아가들. 두 아이를 건사하느라 지쳐 보이기도 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소중한 아이들을 마음껏 사랑해 주는 다정한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도착하자마자 엑스포에서 진행된 음식문화축제 구경을 하러 갔는데, 안타깝게도 폐장 시간이 다 되어 제대로 구경할 여유는 없었다. 내려가는 KTX 안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하여 기차가 10분 이상 역에 정차하여 긴급구조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름도 모르는 낯선 분이지만 열차탑승객 대부분이 한 마음으로 응급상황이신 환자분이 무사하시기를 응원했다. 열차 안에 의사, 간호사, 구급대원 등 관련 직종이 계시면 도움을 달라는 방송에 귀한 손길이 얹어져 무사히 지역 구급대에 인계되셨다.


   오후 내내 바깥 구경하느라 지친 아가들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나니 드디어 육퇴 타임. 어머니가 마련해 주신 건강한 식탁으로 맛나게 저녁을 먹고,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과 달달한 디저트로 야식을 주문했다. 아침에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쌍둥이를 또 먹이고 씻기고 난 후, 아가들을 데리고 여수 바다를 구경하러 갔다.


   햇살이 막 비쳐오는 바닷가를 바라보는데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 당황스럽기도 민망하기도 했는데 "그만큼 바다가 참 그리웠었나 보다"라고 말해주어 고마웠다. 포항 송도해수욕장 근처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엔 남해바다를 5분 거리에서 자주 보며 자란 물고기자리 여자는 너른 바다에 와서야 한참 잊고 지내던 고향을 겨우 만난 것 같은 기분이다.


   이번 연휴가 끝나고 나면 크리스마스 전까지는 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질 거다. 그렇지만 30분 남짓 바다를 바라본 것만으로도 마음이 뭉클해지니 나에게 바다는 마치 헤아릴 수 없이 깊은 사랑이 담긴 엄마의 품 같은 곳인가 보다. 오늘 조금은 흐리지만 푸르른 바다를 만날 수 있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게 주어진 앞으로의 날들 힘차게 살아갈 용기를 조금 더 얻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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