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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Oct 18. 2023

보고 싶은 얼굴

자꾸 목이 간질간질한 게 비염과 재채기의 계절인가 보다. 아침에는 춥고 낮에는 아직까진 따스하고 밤은 선선하다. 날이 추워질수록 우리에게는 따뜻한 옷보다도 따뜻한 서로의 온기가 더 필요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 시기 때문에 꽤 오래 못 만난 그리운 얼굴들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신기하게도 어떤 모임이든 내가 주로 모임을 개최하고 운영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바쁠 때는 나 빼고 만나라고도 했는데, 내가 없이는 모여지지 않는다고들 한다.


  먼저, 대학교 때 만난 친구들이 있다. 같은 과에서 만나 같은 선교단체로 인연을 맺고 심지어 대학교 2학년 때는 같이 살기까지 했던 동기 4명, 다른 과 친구들 두 명까지 포함하여 선교단체에서 4학년 때까지 함께 훈련받고 졸업한 같은 학번의 6명의 동기가 있다, 각각 결혼도 하고 아이도 키우고 하느라 바쁘지만 짬을 내어 틈틈이 시간을 잡아 만났었다. 마침 다음 주에 선교단체의 Home Coming Day가 있다고 해서 더욱 친구들이 생각났다. 모이자고 했더니 연말 연초쯤이 좋다고 해서 슬슬 만날 것을 기획 중이다.


   다음으로는 VT모드의 파란 화면으로 인터넷을 접했던 시절부터 함께 했던 가수의 팬클럽 멤버들이 있다. 한 가수에 대한 애정을 계기로 만났지만, 우리끼리 놀러 다니다가 더욱 친해져서 각종 에피소드가 넘쳐난다. 대부분은 대학생 이상의 나이였는데 당시 열여섯 살이었지만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 외모로 대학생 형, 누나들과 놀아주던 중학생이 한 명 있었다. 최근 그 친구의 생일이 있어서 안부를 물어보면서 “너 결혼은?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했더니 “이 누나 뭐지? 나 안 그래도 결혼해.” 했다. 덕분에 청첩장 수령 모임이 다음 주에 열리게 되었다. 반가운 얼굴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조금 설렌다.


   세 번째는 예전 교회에서 함께 청년부로 활동했던 사람들의 모임이다. 먼저 대학생 때 섬기던 교회에서 만났던 오빠와 언니, 동생들이 있다. 청년부가 재적인원 30명에 출석 인원은 25명이 채 안 되었는데, 그때 같이 청년부를 했던 오빠와 언니, 동생들 중 7명이 목회 사역을 하고 있고, 8명이 목회자 사모님이 되셨다. 신기하게도 주변에 목회자, 사모, 간사님들이 수두룩해서 원래 알던 사이는 정중하게 대하지 않고, 청년 때처럼 막 대해주면 그렇게 또 즐거워한다. 구심점이 되는 목사님께서 독일에서 10년째 사역 중이신 관계로 예전처럼 자주 모이지는 못하지만, 최근 목동에 담임목회로 부임한 또 다른 구심점이 계셔서 2월에 미리 만나러 다녀왔었다. 20대 초반에 만났던 이들이라 지금은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서로의 안부를 묻는데 늘 진심이라서 좋다.


   마지막으로는 직장 동료이자 지금은 동역자가 된 사람들이다. 여러 군데의 직장에서 일하면서 그때그때 스쳐 지나간 시절 인연들도 있었지만, 학교를 옮겨도 꾸준히 만나게 되는 동료 샘들도 있었다. 2007년에 함께 일했던 부서 선생님들과는 지금까지도 매년 한두 번씩 날을 잡아 만나고 있는데, 코로나 때문에 모임이 갑작스레 중단되었다. 코로나가 좀 정리되면 만나자고 이야기는 했는데 각자의 거리가 뿔뿔이 흩어지다 보니 만나려고 날을 잡는데도 한참이 걸린다. 그 외에도 2010년에 근무했던 학교 신우회 선생님들과는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다. 2011년부터 2년간 근무한 학교에서 함께 신우회를 하던 선생님들과는 종종 통화도 하고 여전히 가깝게 지내고 있다.


   2013년부터 5년간 근무한 학교에서 만난 선생님들이 있는데, 처음에 만났을 때는 다들 미혼이었지만 이제는 모두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10년 정도 되었지만 지금까지도 꾸준히 만나고 있는데, 그런 우리 4인방을 보고 한 선생님의 남편이 “오늘 핑클 모임이야?”라고 물어본 뒤로 우리는 핑클이 되었다. 참고로 내가 메인보컬 담당이다. 핑클 모임은 최근 제대로 못 만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다들 출생 3년 이하의 아기들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남녀 쌍둥이의 엄마가 된 A샘은 20개월 차 쌍둥이를, B샘은 막 돌이 지난 12개월 차 아들과 고양이를, 가장 최근에 엄마가 된 C샘은 이제 갓 57일 된 신생아를 양육하는 중이다. 바쁜 선생님들을 대신해서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내가 집집마다 방문하여 돌아가며 만나고 있다.


   사실 요즘은 모든 것이 안정적으로 흘러가는 편이다. 언제 그런 날이 있었나 싶게 평화로운 날들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 시즌에는 정말 아무도 만나지 못했는데, 그나마 조금 잦아들면서 그리웠던 얼굴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더 기분 좋게 느껴지는 날을 보내고 있다. 조만간 그립고 보고 싶었던 얼굴들을 만나 웃으며 회포도 풀고 맛있는 식사도 나눌 시간을 기대하면서, 차츰 깊어 가는 가을을 조금 더 만끽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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