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나의 금요일은 활활 타오르는 활화산처럼 뜨거웠었다. 출근하는 평일에는 거리가 멀어 가지 못했던 각종 맛집과 전시, 공연도 보고 못 만났던 친구들과 약속을 잡아 전철이 끊기기 직전까지 놀아 재끼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T.G.I.F.(Thanks God, It’s Friday)의 정신과 압구정 날라리의 불금의 얼을 이어받아 매주 시간이 아깝지 않게 실천하며 그야말로 Hot하게 주말을 맞이했었다.
오라고 하는 곳은 없어도 내게는 언제나 갈 곳이 있었다. 내가 가는 곳이 곧 길이요, 재미요, 오락이었다.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들은 항상 있었으니까. 체력과 기운은 흘러넘쳤고 지치는 게 뭔지도 몰랐던 시절이었다.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도전했고 에너자이저를 자처하며 좋아하는 것들을 하기 위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전국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입버릇처럼 결혼 전까지는 서울에서 살면서 충분히 놀겠다고 했다. 그 말대로 결혼 후에 경기도로 이사를 오면서 삶의 중심 무대가 서울을 벗어나게 되었다. 불금을 즐기고 싶었지만 봉봉이가 짖어 민폐가 되지 않으려면 너무 늦지 않게 집에 돌아가야 했다. 게다가 짝꿍은 결혼 초반에 몇 개월 동안이나 매주 평일에는 지방 출장을 가 있어서 한 주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 금요일이기도 했다.
그런 이유들로 본의 아니게 불금 대신 집에서 편하게 쉼을 즐기는 휴금을 보내게 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불금의 이미지는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는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거라서 조금 아쉬웠다. 때로 둘이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케이크에 촛불을 붙이기도 했지만 언젠가 또다시 화려한 금요일을 보낼 수 있기를 기다렸었다.
스테이크와 같은 통고기를 구울 때 고기를 미디엄 정도로 적당히 익힌 후에 잠시 휴식 시간을 두는 것을 래스팅이라고 한다. 래스팅을 해 준 고기는 속까지 열이 골고루 퍼지면서 육즙을 잡아주어 부드럽고 촉촉한 상태가 되어 더욱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우리의 인생에도 래스팅이 필요한 것 같다. 바짝 마르고 건조해진 삶을 뜨끈뜨끈한 열기로 익혀주고 속까지 따뜻하게 데워져 촉촉해질 수 있도록 스스로를 돌보아 주는 시간 말이다.
다행히도 편안한 집에서 가족끼리 함께 맛있는 걸 먹고 보고 싶었던 영화나 드라마, 예능을 같이 보고 차분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또 다른 형태의 불금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나에게 금요일이란 한 주 동안 수고한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며 다정하게 보내는 따뜻한 날이다.
물론 금요일이든 주말이든 평소 가지 못했던 곳도 가고 사람들도 만난다. 다만 나의 체력과 건강에 무리될 만큼 약속을 잡거나 할 일을 만드는 것과 같은 행동은 하지 않으려 한다. 그게 나를 지키고 행복하고 편안한 금요일 밤과 주말을 만드는 비결이란 것을 이미 알아버렸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