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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Oct 28. 2023

뜻밖의 타임슬립

아주 오랜만에 서울에서 약속이 있었다. 서로 알고 지낸 지 무려 20년이 넘은 이들과의 만남이 성사된 것은 모임의 가장 막내라인 중에 핵심인물인 시그널 군의 결혼 소식 덕분이었다. 


   9월 말이었나 시그널 군의 생일이라고 카톡이 알려주기에 안부를 전하며, 너 결혼할 때 되지 않았냐 하고 가볍고 장난스럽게 물어봤을 뿐이었다. 시그널 군은 마침 다음 달쯤 청첩장이 나온다며 어떻게 알았냐고 내게 되물어 왔다. 별 의미 없이 질문을 던졌던 나로서는 기쁘면서도 살짝 당황스럽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그렇게 시그널 군의 결혼 소식이 단톡방에 전해졌고 청첩장을 준다고 하기에 축하하는 마음으로 다 같이 모이기로 했다. 여기저기에서 모인 사람들은 예비신랑이 정신없이 나오는 통에 막상 중요한 청첩장을 두고 왔다고 해서 살짝 김이 빠졌지만 미리 보내준 모바일 청첩장으로 아쉬움을 대신하기로 했다. 


   인생의 어느 한 시절을 함께 보낸 사람들에게는 추억이 가득 쌓여 있어서, 시간이 꽤 지나 만나더라도 다시 그때로 돌아간 듯 금세 편안해질 수 있어 참 좋다. 이번에도 모이자마자 우리가 같이 지냈던 즐거운 추억들을 나누느라 서로 오디오가 계속 겹칠 정도로 열띤 대화가 이어졌다. 


   시그널 군과 누나들 3명이 함께 영화관에서 "공공의 적"을 보러 갔던 날이 있다. 당시 시그널 군은 열일곱 살로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라서 제재를 받을까 봐 몹시 긴장했더랬다. 영화관 직원의 "잠깐만요!" 하는 부름에 바짝 얼었는데, 정작 그는 가볍게 통과되었다. 대신 당시 이십 대 중반이던 세 누나들만 신분증을 보여달라는 요청을 받아야 했다.


   미성년자 출입 불가 장소에 갈 때마다 모든 장애물을 뚫어버리던 나이에 비해 성숙한 그의 외모 스토리 시리즈는 자꾸 말해도 질리지 않고 다들 빵 터지는 소재다. 멀리 전주에서 올라온 한 오빠는 그 시절과 0.1%도 달라지지 않은 공대생 체크룩과 더벅머리 헤어스타일에 까무잡잡한 외모로 냉동되었다가 온 것 아니냐는 놀림을 받기도 했다. 


   매번 만날 때마다 잊지 않고 나오는 추억의 에피소드들을 곱씹으며 너나 할 것 없이 즐거웠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웃음이 끊이지 않는 대화 속에 자주 함께 만나 시간을 보내던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의 그때로 마치 타임슬립하여 돌아간 듯했다. 분명 몸은 2023년에 있는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잠시 그때의 스무 살 대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아서 조금 설레기도 했다. 


   언제나 가장 어렸던 막내 남동생 같은 친구가 결혼을 한다는 사실이 새삼 낯설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각자의 삶이 바쁘다 보니 이렇게 다 같이 모인 것도 꼬박 6년 만이었다. 이번 시그널 군의 결혼을 계기로 일 년에 한 번씩이라도 서로 얼굴을 보자는 다짐을 하며 행복했던 모임도 끝을 맺었다. 


   한 달 후, 시그널 군의 결혼식에서 다시 만나서 또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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