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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Oct 31. 2023

한 달에 한 번

한 분야에서 꽤 오래 일하면서 내가 하는 일의 특성상 한 자리나 장소를 붙박이처럼 지키기를 요구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고 보니 나로서는 원거리 출장이나 해외 출장을 가는 회사원들이 부러울 때가 많다. 주말을 제외하고 거의 매일 하루종일 자리를 지켜야 하는 일을 하다 보니 한 곳에 나무처럼 박혀 움직일 수 없는 신세가 가끔 처량하기도 하다.


   나와는 반대로 남편은 가까운 거리는 물론 원거리 지방 출장도 잦은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기회만 닿으면 어딘가로 훌쩍 떠나는 여행을 늘 꿈꾸는 나와는 달리 가만히 집에서 쉬거나, 집 근처에서 바람 쐬는 정도를 좋아한다. 남편은 출장으로 전국을 다녀야 하는 직업이라서인지 멀리 떠나는 여행은 그다지 즐기지도 좋아하지도 않는다.  


   코로나 전에는 그나마 아이들을 인솔해서 야외 체험학습이나 동아리 활동도 나가고, 연수 등으로 종종 나갈 기회가 있었다. 코로나가 휩쓸고 지나간 후에는 그마저도 전부 온라인 줌 연수로 대체되어 답답한 감정이 들 때가 많다. 그런 나에게도 한 달에 딱 한 번, 아직 해가 떠 있는 시간에 학교 밖에 나가 바깥바람을 쐴 날이 있으니 그건 바로 같은 전공의 동료샘들과 함께 하는 전문적 학습공동체인 학교도서관연구회다.


   각 학교마다 한 명만 배치되어 있다 보니 한 달에 한 번 만나 서로 업무에 관한 고민과 좋은 아이디어들을 나누고 용기를 얻는 이 시간이 정말 귀하다. 출장이 잡힌 날은 아침 출근길부터 왠지 설렌다. 만나면 수업연구와 업무수행에 좋은 인사이트와 시너지를 준다. 또 각자 겪고 있는 고충도 나눌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직업적 상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힐링타이밍이기도 하다. 귀한 자료들을 공유하고 마음이 벅찬 위로도 얻고 나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며 다음 만날 날을 기약한다.


   때로 속이 상하는 건 이 직업을 오해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전문가인데도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자세히도 모르면서 혼자 있으니 편하겠다, 책에 둘러싸여 있으니 얼마나 좋냐, 할 일 없고 편해 보인다 등 우리가 하는 일을 너무도 쉽게 폄훼하는 발언들을 한다. 혹은 법으로 정해진 기준과 도서선정위원회를 거쳐 정상적 절차로 구비한 책임에도 자기 단체의 주장과 이익에 따라 함부로 검열하고 독서할 자유를 제한하는 일들도 많다.


   자기 아이가 빌려가서 잃어버린 책인데도 반납 없이 전학 가거나 졸업하는 일명 먹튀도 너무 많다. 빌려간 책을 잃어버렸다고 해서 똑같은 책으로 사서 반납해 달라고 안내하면, 귀찮은데 돈 줄 테니까 직접 사면 안 되냐는 황당한 발언을 하시는 분도 봤다. 공정한 절차와 평가를 거쳐 도서부원을 선발했음에도 자기 아이가 떨어진 이유와 근거를 대라며 전화하고, 점수표를 보여주지 않으면 인정할 수 없다며 항의하기도 했다. 아이가 학생증을 잃어버렸다고 해서 잘 안내하고 집에 보냈는데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욕을 시작해서 2시간 내내 'ㄴ'자 들어가는 욕이란 욕은 다 하던 학부모도 있었다.


   도서관 문을 닫으면 안 된다는 이유로, 몸이 부서져라 아파도 병원 한 번 마음껏 가기가 힘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수업이 거의 없으니 편한 거 아니냐고 말하는 개념 없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 맡은 일을 더욱 잘 해내기 위해 꼭 필요한 연수 참석 및 배울 기회조차도 빼앗기고 있는 상황이다.


   책이란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친구가 되어주는 특별한 존재다.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소개하고 평생 가는 독서습관을 만들어 주고 싶어 고군분투하고 있는 사서교사들의 귀한 노고를 기억해주면 좋겠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이 시간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는 동료들이 서로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우리의 일을 잘 해낼 수 있도록 불필요한 것으로 방해하지 말고 지지해 주는 분위기에서 신나게 일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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