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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는 구멍이 나 있다

by Pearl K

다음에 나열한 작품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범택시 1,2>, <앵그리맘>, <국민사형투표>, <더 글로리>. 예로 든 작품들은 모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가해자를 응징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들이다. 전에도 이런 작품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최근 들어 점점 더 많아지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우리나라의 법과 판결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추락했기 때문이다.


년 전, 어떤 조사에서 "우리나라의 법이 시민들을 보호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설문에 74% 이상이 아니라고 대답했다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대한민국의 법은 가해자 중심의 법 체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가해자의 인권을 지키느라 정작 피해를 본 피해자의 안위는 무시되는 아이러니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미국의 법정에서 선고되는 형량과 대한민국의 법정에서 선고되는 형량은 적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년의 차이가 난다. 미국은 피해자 중심의 법 체계를 가지고 있어 피해자가 가해자를 쏴도 정당방위로 인정된다고 한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반 죽을 만큼 폭행해도, 반격하는 순간 정당방위가 아닌 쌍방폭행이 되어 버린다는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도 돌고 있다.


평범한 일반 사람들이 인식하기에는 현재의 법 판결들은 일반인의 정서와 너무도 많이 동떨어져 있다. 조두순 사건이 그랬고, N번방 사건이 그랬으며, 묻지 마 폭행과 살인을 저질렀던 수많은 범죄자들의 사건이,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죽게 한 수도 없는 사건들이 제대로 된 판결을 받지 않았다. 검찰의 초기 구형과는 다르게 여러 범죄자들이 감형된 이유는 반성하고 있어서, 피해자에게 사죄해서, 심신 미약으로 판단을 못해서 같은 얼토당토않은 이유들이었다.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진심으로 반성할 리가 없다는 생각도 들고, 대체 피해자 외에 누가 그들이 진심으로 사죄하는지 판단할 수 있을까 싶다. 또한, 가중처벌을 받아야만 하는 음주운전과 주취폭력이 심신 미약으로 둔갑되어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상황에 모두들 분노를 금치 못했다.


며칠 전에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비질란테>는 이제까지 억눌려 왔던 피해자들의 분노를 모두 응집시켜 만든 작품인 것 같다. 네이버웹툰에서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연재된 김규삼 작가의 원작으로 디즈니 플러스에서 11월 8일 1~2화가 먼저 오픈되었다. 이 드라마는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많은 화제와 관심을 받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드라마화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원작을 이틀 만에 정주행 했다. 나 역시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겪었던 사건들이 많은 편이었다. 실제로 묻지 마 피해를 당해서 지하철 경비대에 신고했을 때 피해자가 가해자를 데리고 와서 가해자의 범죄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는 어이없는 이야기를 들었던 경험도 있다. 그렇기에 심정적으로는 모범택시가 피해자들을 도와주길 바라고, 잔혹한 범죄자들이 국민사형투표로 심판받기를 원하고, 비질란테의 응징을 응원하고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남는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은 폭력을 폭력으로, 범죄를 범죄로 응징해도 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다. 지난 오랜 시간 동안의 인간의 역사를 모두 다 되짚어 보아도 폭력은 더 큰 폭력을 낳을 뿐 그 어떤 것도 나아지게 하지 못했다. 오히려 폭력은 폭력을 자꾸만 불러 어느 누구도 끊을 수 없는 끔찍하고 끝이 없는 폭력의 악순환 속에 들어가게 하지 않을까?


이런 드라마들은 심정적 대리만족은 될 수 있을지 모르나, 실질적인 대안은 되지 못한다. 결국 범죄를 막고 피해자를 돕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법 체계를 갖추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법을 공부한 판, 검사, 변호사 등 전문가들부터 시작해서 국민 배심원 제도 등을 활용하여 일반인들의 인식 수준에 적합하게 법의 체계와 제도를 올바른 방향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이 꼭 필요할 것이다.


범죄자들에게는 각각의 사안에 적합한 정당한 죗값을 치르도록 하는 것은 물론이고, 피해자 지원제도와 보호가 무엇보다 신경 써야 할 핵심 사안이다. 그들이 정상적인 일상을 회복하고 돌아갈 수 있도록 안전하게 보호하고, 지속적으로 신체적, 정신적 치료를 지원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웹툰이, 드라마 작품들이 시대에 맞지 않는 법의 문제를 인식하고 공론화시켰으니 이제는 잘못 제정된 법률들을 바로잡고 지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해 나가야 할 차례다. 앞으로는 이런 사건들이 과거의 믿지 못할 이야기가 되길 정말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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