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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Nov 22. 2023

좌충우돌 수업 적응기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간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계절이다. 새로운 희망으로 한 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11개월이라는 시간이 훌쩍 흐르고 말았다. 


   5년간 몸담고 있던 지난 직장을 퇴사하고 후련함을 느낀 것도 잠시, 새로운 일터에 적응하느라 눈, 코 뜰 새 없이 1학기가 지나갔다. 도서관의 고유 업무 외에도 이것저것 넘어온 업무가 너무 많아서 허덕이고 있는데도, 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벅참이 있는 시간이었다. 미친 듯이 바쁜 와중에서도 살아 있다는 생동감을 어느 때보다도 분명하게 느끼며 실감했다. 


   교사로 신분이 변하고 가장 의미 있었던 건 바로 나만의 수업을 할 수 있다는 거였다. 예전에는 자투리 시간이나 다른 선생님의 수업 시간을 빌려 잠깐씩 진행하느라 늘 아쉬웠다. 난감한 건 맡겨진 교수 내용이 전혀 해본 적도 없는, 잘 알지 못하는 분야였다는 거다. 정신이 없더라도 처음으로 내 이름을 걸고 맡은 수업 시간 준비를 포기할 순 없었다. 


   학교에서 가장 바쁜 달은 3월이다.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하면서 모든 시스템을 새로 세팅하고 보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전담할 수 있는 시간을 맡은 만큼 무엇보다 이 수업을 잘 해내고 싶었다. 또 교과가 아니라 대충 수업한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학교 도서관에 있는 관련 도서를 검색하고, 없는 책들은 사비를 털어 열댓 권을 구입했다. 


   이리저리 모은 책을 잔뜩 쌓아두고 어떤 것을 수업해야 할지 찾느라 닥치는 대로 발췌독부터 했다. 어떠한 교재도 강의자료도 전혀 없기에 맨땅에 헤딩하듯 시행착오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책을 통해 이해하고 배운 범위 내에서 한 주, 한 주의 수업을 안간힘을 쓰며 준비했다. 모든 수업지도안과 수업자료를 새로 만들어야 했기에, 품도 가장 많이 들고 신경도 그만큼 쓰였다. 


   내가 간과했던 건, 정작 수업을 들을 아이들의 수준과 눈높이를 생각하지 못했다는 거다. 고등학교에 5년간 있다가 오랜만에 중학교로 내려오다 보니, 나름 준비한다고 했지만 아이들의 수업 참여도나 지식수준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한 마디로 내용은 충실했지만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눈높이로 재미있는 수업을 만드는 것에는 실패했다. 


   정규 수업 시간이 아니라 방과 후 시간에 진행되는 수업이었기에 종일 수업을 들은 아이들은 이미 지쳐 있었고, PPT와 영상을 활용한 개념 이해, 간단한 퀴즈 등의 활동만으로도 금세 질린다고 했다. 아이들의 입장은 생각하지 못하고 내심 서운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열심히 준비했는데 왜 알아주지 않지?’, ‘유익하고 알찬 내용이 이렇게 많은데 왜 듣지 않지?’라는 생각에 속상함이 커졌다. 


   유난히 목소리가 크고 하고 싶은 말은 다 하는 타입의 정은이는 조금 진지한 내용을 설명할라치면 매번 “샘~ 재미없어요. 방과 후는 노는 시간인데요.” 하며 나의 남은 의욕마저 사정없이 꺾었다. 한 학기를 꾸역꾸역 마무리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나의 수업이 얼마나 학생들에게 힘든 수업이었을지를 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나마 2학기가 되면서부터는 진행하던 강의가 폐강되었다. 학생들의 수준에 맞는 수업을 진행하지 못한 결과였다기보다는, 다른 재미있는 강의가 더 많았던 걸로 해두자. 그 덕분에 모든 업무를 해내는 데 있어 훨씬 여유가 생겨서 오히려 좋다. 시행착오를 겪은 만큼 내년에는 다른 주제로 잘 준비해서 나도 재미있고, 학생들도 즐거운 수업을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며칠 전, 기말고사가 끝난 이후 도서관을 활용한 다양한 협력 수업을 진행하시려면 연락을 달라고 전체 메시지를 돌렸다. 감사하게도 그 연락에 반응해 주신 선생님이 계셔서 12월 중에 3학년을 대상으로 진행할 교과 협력 수업을 준비 중이다. 아직은 수업 초보 티가 팍팍 나는 교사와의 협력 수업을 누구보다도 기대하시는 교과 선생님의 모습에 나도 다시 용기를 내어 보려고 한다. 


   1학기 때 배운 교훈을 바탕으로 함께 수업을 진행할 선생님과 잘 조율하고 협의하는 게 먼저다. 이번 기회에 학생들이 수업을 통해 꼭 필요한 것들을 얻어 가는 유용한 수업, 신나는 활동으로 기억에 남는 수업 시간을 만들고 싶다. 햇병아리 신규 모드로 다시 돌아가 열심히 준비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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