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성인이 되면서 언젠가 내 차를 타고 드라이브할 날이 올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의외로 좀처럼 운전면허를 딸 기회는 생기지 않았다. 월 15만 원으로 모든 비용을 해결해야 했던 대학생에게 한 달 생활비의 두 배가 넘는 학원비 37만 원은 너무도 큰 금액이었다. 친구들이 “너는 왜 면허 안 따냐?”하고 물으면 “시간도 없고, 학원비가 조금 내려가면 그때 따려고.”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하곤 했다.
시간이 지나면 내려갈 줄 알았던 운전면허학원비는 점점 오르더니 급기야 100만 원을 돌파했다. 당시 사회초년생이었던 내 월급은 고작 70만 원이었다. 자연스럽게 점점 더 운전과는 멀어지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서 일하기 시작하고도 꼬박 10년이 지나서야 드디어 운전면허에 도전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졌다. 당시 교회 근처인 이문동에 살고 있었는데, 곧 은평구로 이사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일부러 이사 갈 집과 가까운 면허학원을 선택하여 등록하기로 했다.
나름대로는 운전하고 다녀야 할 길 근처에서 면허를 따면 여러모로 좋지 않겠냐는 계산이었다. 현실은 아침 일찍부터 1시간 반이나 걸리는 거리의 면허학원에 가느라, 유일하게 쉴 수 있는 토요일에 늘 새벽같이 일어나야 했다. 특별한 비전을 품고 있었기에 흔히 따는 2종 대신 1종 보통 면허에 도전했다. 필기와 기능 시험은 단번에 붙었는데 문제는 도로 주행이었다.
도로 주행 시험도 한두 번 안에 너끈히 통과하리라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첫 번째 도로 주행 때는 노란불이어서 멈췄는데 강사가 가라고 한 자신의 지시를 듣지 않았다고 실격을 주었다. 두 번째 도로 주행에서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아슬아슬한 위치에 불법 주차된 차 덕분에 실격당했다. 세 번째 도로 주행 시험은 모든 코스를 무사히 클리어하고 학원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다른 강사가 차를 몰고 후진하는 걸 피하려 급정거하다가 시동을 꺼뜨렸다.
너무도 억울해서 학원에 항의했더니 블랙박스 확인 작업을 해 본다고 했다. 결국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한다며 무료로 2시간의 도로 연수를 더 듣게 해 주었다. 그렇게 다사다난한 과정 끝에 2014년 12월 첫째 주 토요일 드디어 네 번째 도전에서 무사히 1종 보통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있었다. 마침내 원하던 면허는 취득했지만 당장 차를 구입할 여유는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장롱면허로 전락할 것만 같았다.
결혼 후 2년이 조금 더 지났을 무렵 시아버님의 제안으로 자동차 상사에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아버님이 알고 계신 중고차 딜러를 통해 우리의 첫 차를 계약했다. 그게 벌써 5년 전이다. 남편은 운전을 그다지 즐기지 않기에 결국 우리 집 운전은 내가 전담하게 되었다. 3년 만의 장롱면허 탈출을 위해 도로 연수를 받으라는 제안을 해 주셨는데, 나는 지나치게 용감하고 자신감이 넘쳤다.
마침 병가를 내고 쉬고 있던 기간이어서 낮에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이왕이면 운전 연습을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매일 하루에 서너 번씩 아파트 우리 동 주차장을 빙글빙글 돌았다. 주차장 돌기에 익숙해질 무렵에는 범위를 아파트 단지 전체로 넓혔다. 다음은 가까운 교회까지, 다음은 집과 근거리의 지하철 역과 주변까지.
마지막으로는 두 배 정도 걸리는 다른 지하철역까지 범위를 넓혀가며 한 달 정도 천천히 혼자 운전 연습을 했다. 도로 연수를 받으라고 주신 용돈은 내 간식비로 사용되었다. 드디어 옆자리에 남편을 태우고 가까운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갔던 날, 연수 없이 스스로 운전을 해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그러고 보니 운전을 시작한 지 올해로 꼬박 5년이 되었다. 짧은 성취감도 잠시뿐, 몇 번의 가벼운 사고를 겪으며 식겁한 적도 있지만 기동성이 생기니 확실히 삶의 반경도 넓어졌다.
지난 5년간 출퇴근뿐만 아니라 근거리와 장거리까지 많은 곳을 다녔다. 나라는 사람은 본래 규칙이나 규정은 배운 그대로 지키는 편이다. 처음엔 워낙 초보이기도 했고, 아무래도 생명이 걸려 있는 일이다 보니 더욱 신경이 쓰였다. 그렇기에 운전하는 동안에는 되도록 규칙에 따라 안전하고 성실하게 운전하려고 노력했다. 도로 위에서 수많은 비상식적인 운전자들을 만나면서 그런 다짐은 점차 커다란 혼란을 겪기 시작했다.
내일은 그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