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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Nov 27. 2023

My Utopia

어린 시절 동화 속에서는 악한 사람은 벌을 받고, 선한 사람은 행복을 얻었다. 힘들고 어려워도 끝끝내 자신의 가치를 지켜 믿음에 대한 보답을 받는 주인공들을 통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웠다. 그건 학교에서 배운 도덕 교과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혼자서 살 수 없고, 함께 살기 위해서는 모두가 합의한 규칙과 질서를 지켜야만 한다고 배웠다. 책에서 배운 대로, 교과서에서 또 수업 시간에 배운 대로 살면 된다고 믿었다. 올바른 것을 선택하고, 약한 이들을 돕고, 선한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고. 그렇게 하면 굉장한 사람이 되지는 못해도 평범하고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나는 지나치게 순진하고 천진난만했다.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은 토머스 모어가 말한 ‘유토피아’ 즉, 이상향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다. 내가 기대한 세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끔찍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가치관이 부딪치고 깨어졌다. 오히려 삶이라는 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악착같이 그 어떤 장애물이나 한계도 뛰어넘어야 했다. 서로를 속이고, 미워하고 증오하며 차별하고 배척하며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짓밟아야 했다.


   어릴 적 배운 그대로 살려고 하면 쉽게 속임 당하고 때론 이용당하고 그대로 버려졌다.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나도 잔인하고 냉정해져야만 했다. 함부로 연약한 속살을 들켰다간, 남김없이 갈기갈기 찢긴 채로 누군가의 먹이가 되기 십상이니까.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가시가 박힌 강철 갑옷을 두르고 ‘혹시 ’말캉거리는 내면을 들키지 않을까' 눈치를 보며 사느라, 정작 내가 그 무게에 짓눌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책이나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을 가르칠 때마다, 마음속에 물음표가 수백 개씩 떠오른다. 나는 이 아이들에게 권선징악 즉, 악한 행동은 마땅히 징벌하여 바로잡고 선한 행동은 권하여 장려하는 세상을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아이들이 배운 대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자신 있게 말해줄 수 있을까.


   내가 아직 어린 나이일 때는, 어른들이 왜 그런 것들을 해주지 않았을까 답답했다. 정작 내가 어른의 나이가 되어보니 할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없고, 막상 바꿀 수 있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매년 자라 가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부끄러워진다. 어제보다는 나은 오늘이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오히려 어제보다 못한 내일만을 던져놓은 무책임한 어른이 되어 버린 것 같아서.


   넘어져서 절망만 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그저 하루 또 하루 나는 내가 믿는 가치대로 살아가려고 한다. 누군가가 쓸데없는 일을 왜 하냐고, 그냥 네 인생이나 제대로 살라고 말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 같은 가망 없어 보이는 일이라고 해도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다. 적어도 앞으로 자라나는 청소년들과 청년들에게는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미래가 제공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제발 서로가 서롤 믿을 수 있는 사회가, 배반하지 않는 믿음을 만날 수 있는 이들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공정하게 주어지는 기회가, 이해와 관용과 위로가 가득한 관계가 여기저기서 맺어지기를 바란다. 그것이 나의 진정한 이상향이자 유토피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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