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인가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신기한 프로그램을 하나 보았다. 프로그램 제목이 성지순례라서 어디 유적지나 명승지에 여행을 가는 콘셉트인가 하고 무심히 넘기려 했다. 그 순간 출연진들의 의상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 명은 승복을, 다른 한 명은 미사 로브를 또 다른 사람은 깔끔한 양복을 입고 있었다. 조금 지켜보니 목사님과 신부님과 스님이 함께 OOO의 성지로 유명한 곳들을 찾아가서 새로운 체험을 하는 거였다. 내가 본 편은 중고의 성지로 유명한 동묘시장에 가서 다양한 제품들을 둘러보는 거였다. 의상을 입어보기도 하고, 성직자로서의 자신들의 시선을 이야기하기도 하며 서로 존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목사님이 진짜 말이 안 되는 사랑은 바로 예수님이 베푸신 사랑이라고 말했다. 그분의 사랑은.. 했더니 신부님과 스님이 이거 그거죠? 가스라이팅! 했다. 근데 gaslighting이 아니라 God's lighting 갓스라이팅 이라고. 그 단어가 내게 훅 다가왔다.
궁금한 건 못 참으니 파파고를 활용하여 God's lighting을 검색해 보았다. 영어를 한국말로 바꿔달랬더니 '신의 조명'이라고 번역되어 나왔다. 영어를 썩 잘하지 못하는 편이라서 제대로 번역이 된 건지는 모르겠으나, 그 단어가 꽤 마음에 들었다.
인생의 어두운 곳에서 걷고 있을 때, 앞이 보이지 않아 캄캄할 때 우리를 비추어 조명해 주시는 신의 빛 God's lighting. 눈이 어두워 잘 인지하지 못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마다 그분의 빛이 우리를 조명해 주고 계시리라는 마음이 들었다.
나보다 앞서 나가시면서 발이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어딘가에 부딪쳐 다치지 않도록 신의 조명이 우리를 비추고 있다는 것. 그 빛을 따라가다 보면 미처 알지 못하는 사이에 무사히 목적지까지 도착해 있을 것 같다. 그때까지 빛을 따라 잘 걸어가면 되는 거다.
최근엔 날이 빨리 어두워지는 바람에 산책을 나갈 때는 항상 주변이 굉장히 깜깜하다. 캄캄한 곳에서 시야가 좁아지는 병을 앓고 있는 봉봉이에게 밤산책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매일 일찍 퇴근해서 아직 해가 떠 있는 시간에 산책을 시켜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요즘 산책을 나가는 밤에는 핸드폰을 꼭 챙긴다. 봉봉이가 조금이나마 앞을 볼 수 있도록, 폰에 있는 플래시 기능을 사용해 걸어가는 내내 불빛을 비춰준다. 팔을 길게 뻗어 강아지가 가는 앞길에 장애물이 없는지 플래시로 비추다가, 부딪칠만한 장애물이 보이면 잡고 있던 목줄을 살짝 당겨 피할 수 있게 한다.
또 발이 빠질 수 있는 하수구 뚜껑이 나타나면 "봉봉아, 점프!"하고 외친다. 내 말을 알아듣는 건지 신통방통 하게도 하수구 뚜껑을 피해서 그 위로 점프하며 날아오른다. 장애물 구간을 무사히 지나가면 봉봉이가 마음껏 풀과 나무의 냄새를 맡을 수 있도록 목줄을 느슨하게 하고 불빛을 비추며 그 뒤를 따라간다.
신께서도 인간에게 그렇게 빛을 비추어 주며, 우리가 흔들리지 않고 바른 방향으로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계실 거다. 위험에 처하면 우리의 삶을 살짝 당겨 그곳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시고, 발이 빠질 위기가 닥쳐오면 말씀을 통해 점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계신 거다.
God's lighting. 신의 조명이 우리의 삶을 비출 때, 그 빛이 비치는 범위 안에서 살아가고 싶다. 인생에서 여러 번 넘어지고 쓰러지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줄 테니까 말이다.